오늘 한국 미디어들은 발버둥치고 있다. 누구도 생존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매체 간 경쟁은 하늘을 찌른다. 세상을 ‘ 인터넷 이전과 이후의 시대’로 분류해야할 만큼 변화가 심하고 첨단 정보량은 쇄도한다. 시대의 매체는 시대의 질과 양을 담아낸다. 매체의 생명력은 매체 브랜드 파워에 좌우된다. 곧 미디어로서의 신뢰와 품질경쟁력이다. 미디어의 힘은 바로 그 미디어를 채우고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힘이다.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가치 있는 뉴스와 쟁점을 잡아채 맥락을 가다듬고 갈무리한 다음, 부가가치를 집어넣어 수용자에게 상품으로 내놓는다. 이런 편집 프로세스는 아무나 진행하지 못한다. 오랜 기간 뉴스의 현장에서 단련된 전문 저널리스트들의 몫이다. 저널리즘은 예민하고 고달픈 숙명이다. 시대를 명명하는 내공은 권력의 방책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참여정부는 국정 운영역량의 부족으로 집권 초기부터 언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집권세력은 국민 여론과 가교 역할을 하는 일부언론으로부터 지속적 비판을 당한 탓에 자신들의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판단 한 듯하다. 뭔가를 벼르고 별러온 것 같다. 이번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이 그 흐름 선상에 있다.
수 천 명의 기자들이 정책의 산실인 관청을 취재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시민들이 자유의지로 수익을 추구하며 사회발전의 동력을 이룬다. 관은 제도 관리를 통해 시민 역량의 최적화를 위해 지원하는 형세이다. 언론은 시민사회의 세태를 전달하면서 시시비비를 간추린다. 그 말단의 한 지점이 기사 송고실이다. 기사를 작성해 본사로 송고하는 공간 일뿐이다. 음모의 공간이 아니다. 고시원 독서실보다 좁고 초라하다. 빽빽한 공간에 앉아 전광석화 같은 판단력으로 데드라인과 싸워야한다.
대통령은 공공연히 이 기사송고실을 음습한 기자실로 억측하면서 죽치고 앉은 몇몇 기자들의 담합 현장으로 매도했다. 사단은 이 사려 깊지 못한 발언에서 발생했다. 게다가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기자실이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게 대못질을 하여 다음 정권에 넘기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한국 기자사회는 한순간에 불량집단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회의 목탁은 커녕 자신들 이익만 좇는 수구기득권 서클에 가입한 멤버가 되고 말았다. 기자 가슴에 꽂힌 유월의 대못질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6월17일 대통령과 언론단체장과의 TV토론회는 사안의 본질을 들춰내지 못했다. 다행히 청와대는 일방적인 발걸음을 멈췄다. 당장의 브리핑룸 통폐합이 미뤄졌고 지속적인 대화타협 창구가 마련되었다. 공직자들로 하여금 기자들의 취재에 적극적으로 응대 하게끔 총리훈령으로 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보공개 창구제도도 실질적으로 강화한다는 취지에 공감했다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미디어 민주주의는 이미 공적 영역에서 언론의 알권리 추구행위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즉 기사송고실 브리핑룸 제공이 관의 시혜나 지원이 아니라 국민에게 응당 보장해야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정책집행은 국민이 이해하도록 기자들에게 취재 지원을 하는 데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당국자의 미디어 설득력은 그 핵심이다.
기자사회를 매몰차게 몰아붙임에 상관없이 오늘 밤 9시 뉴스 시간은 30여개 뉴스꼭지로, 내일 아침신문 수십 페이지는 2백50여개의 뉴스와 해설박스로 가득 채워진다. 자꾸 편을 갈라 니편 내편 분열의 팩트를 발생시킬 것인가. 통합적 탄력성의 담론을 생산할 것인가. 그 첫 단추는 청와대가 끼울 차례다. 그 다음이 기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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