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기자들의 비상총회


   
 
  ▲ 이보경 MBC 기자  
 
우리나라에서 얼마전 언론과 대통령 사이에 한바탕 설전의 회오리가 몰아치는가 싶었는데, 프랑스에서는 비슷한 대치 상황이 갈수록 날이 서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프랑스 27개 언론사 기자회가 모여 비상총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에는 르몽드, 아에프페통신, 파리마치 등 우리 귀에도 낯익은 언론사들이 대부분 포함됐습니다. 회의는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편집권 독립에 관해 공개 질의하면서, 가능한 한 빨리 만나자고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했습니다.

이 일의 직접적인 계기는, 유력 경제일간지 ‘레제코’(메아리)를 대기업인 베르나르 아노 그룹이 인수할 계획을 밝힌 데서 촉발됐습니다. 2억4천만에서 2억5천만 유로, 우리 돈으로 3천억 원 내외에 살 거라는 겁니다.

이 계획은 바꿔 말하면, 해당 그룹이 기존 소유한 경제지 ‘라트리뷴’(논단)의 매각을 의미합니다. 당장 고용이 흔들리게 된 두 신문사 직원들이 우선 긴급히 공동대응에 나섰겠지요.

다수 언론사 기자들을 행동하게 만든 사건은 사르코지 당선 이후 줄을 이었습니다. 기사 검열이 우선 허다했다고 합니다. 주르날디망쉬(일요신문)라는 주간지는 사르코지 부인이 결선투표를 하지 않은 경위를 취재해 실었다가 검열을 당했고, 마땡플뤼스(아침플러스)라는 신문의 기사 검열, 파리마치 지의 알랭 즈느스타르 편집인의 사임 등등...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급기야 프랑스 국영 텔레비전 채널의 하나인 프랑스5가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인 ‘아레 쉬르 이마쥬’ (영상주목)를 폐지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프랑스엥테르’(프랑스안) 라디오에서도 한 프로그램 폐지에 항의하는 직원들의 반발로 파행방송이 빚어졌습니다.

일련의 사태의 백미는 지난 5월 정치폭로 전문 주간지 ‘르꺄나르앙셰네’(사슬묶인오리)의 가택수색 미수 사건입니다. 시라크 전 대통령까지 간여한 무기거래 비자금 사건을 추적해 온 이 잡지는 시라크 측이 개설한 일본 비밀 계좌의 존재를 최초 보도했습니다. 검찰은 취재원을 찾기 위해 잡지사를 불시에 수색하려 했지만 직원들의 봉쇄를 뚫지 못해 무산된 사건입니다.

기자들은 특히 이 사건과 관련해, 유럽연합이 보장하고 있는 취재원 보호의 권리에 반하는 처사임을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또 언론인이라는 직업의 경제적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는 점과 이직 증가 현상을 개탄했습니다.

성명은 이와 함께, “공정한 민주주의를 보증하기 위해서는 견해의 다양성과 정보의 진실성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언론의 경제적, 기술적 변화가 가파른 이 시기에 매체에 관한 제반 법규를 현대화하는 작업이 시작돼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언론자유의 천국쯤으로 여겨지는 프랑스에서 지금 현재 진행형인 일들입니다. 사회의 지배적인 권력과 언론 간의 긴장관계는 선진국이라 해서 없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니,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없어질 수가 없겠지요. 이보경 MBC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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