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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활웅 재미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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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언론은 좌절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문제, 한나라당 대선주자 검증문제, 범여권통합문제, 교육부와 대학의 대치문제 등에 관한 새 소식을 전하는데 바쁘다. ‘신문’이 새 소식을 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언론’의 입장에서는 지난 것이라도 보다 본질적인 것은 가끔 다시 천착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7월을 맞아 북한에서는 7·4 공동성명 3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는데 남한에서는 그런 행사가 없었으며 언론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7·4공동성명은 치열한 내전을 겪은 남과 북이 20년 만에 자주적, 평화적, 초이념적으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한다는 원칙을 처음으로 밝힌 문서이다. 그리고 그 뜻은 1992년의 남북 기본 합의서와 2000년의 남북 공동선언으로 재확인돼 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언론을 포함해서 그 원칙에 대한 인식이 매우 미온적이며 회의적이다. 특히 ‘자주적’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그렇다. 우리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지 말고 스스로 개척해야겠다는 자각이 그 만큼 부족한 탓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우리 운명이 남들의 뒷거래로 결정된 첫 사례는 1905년 7월 미국과 일본이 맺은 소위 카츠라-태프트 밀약이다. 그 무렵 필리핀에서 스페인을 축출한 미국과 한반도에서 중국과 러시아 세력을 몰아낸 일본은 서로의 ‘전리품’을 맘대로 처분할 권리를 ‘교차승인’ 했던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거리낌 없이 통감체제를 깔고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고종을 폐위하고 언론을 틀어잡고 군대를 해산하고 사법권과 재정권도 빼앗고 마침내 5년 후에는 대한제국을 송두리째 식민지로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35년 동안의 고되고 굴욕적인 노예생활을 견뎌낸 후에야 겨우 해방의 날을 맞을 수 있었다.
그러면 해방됐다는 우리는 이제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는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분단이란 굴레가 우리에게 씌어졌다. 흔히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으로 일본항복의 임박을 감지한 스탈린이 교활하게도 이틀 후인 8월8일 별안간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북한을 점령한 것이 한반도 분단의 원인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그것은 틀린 말이다.
1943년 12월초 연합국수뇌들은 카이로선언으로 일본 패전 후 좀 있다가(in due course) 한국을 독립시킨다고 밝혔다. 그러나 1945년 2월의 얄타회담에서 미국은 독일 패망 후 소련이 대일참전하는 조건으로 쿠릴열도와 한반도 일부에 대한 소련군의 점령권을 인정해 주었다. 즉 한반도 분단방침이 이때 이미 우리도 모르게 결정됐던 것이다.
그 후의 38선 획정, 모스크바 3상회의, 남북 분단정부수립, 6·25 내전의 국제전화, 반세기를 넘긴 휴전체제하의 군사정체상태 그리고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에 이르기까지 우리 운명을 가르는 중대사항들이 모두 남들의 뜻에 따라 발의되고 처리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6자회담은 2005년 9·19 공동성명으로 북핵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해 한반도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동북아 안보협력증진방안을 모색한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13 초기조치의 실천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면서 앞으로 남북을 포함한 6자간의 외교장관회담은 물론 관련국 정상회담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남의 손에 농락돼온 우리 운명의 결정에 이제 우리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실로 1백년 만에 처음 오는 기회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기회를 통일된 자주독립 국가를 이루고 우리의 자유와 평화와 번영의 초석을 놓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열릴 6자회담은 물론 외교장관회담이나 관련국정상회담에서 남북이 서로 엇박자로 나가서는 안 된다. 한미일 공조가 아닌 남북공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남북공조를 위한 사전 조율이 남북 간에 시급히 추진돼야한다. 그리고 정부차원의 남북공조가 남북 양쪽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활발한 계몽운동이 전개돼야 할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남북의 지도자들과 언론인들이 인식을 같이 하고 뜻을 모은다면 능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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