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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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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격년제 현대미술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올해 주제는 ‘감각으로 생각하기-정신으로 느끼기’라고 한다. 감각과 정신의 고유의 영역을 교차해서 엮어 놓은 개념이 흥미롭다. 따지고 보면 마음으로 생각하고 머리로 느끼는 현상은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요즘 후보 검증 문제로 시끄러운 대선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특정 후보지지 과정에서도 마음으로 생각하기 현상이 발동된다. 즐겁고 희망찬 감정을 유발하는 후보는 이념이나 정책적 지지도 쉽게 이끌어 내지만, 권태나 혐오, 불안감을 일으키는 후보는 이성적인 지지를 받기 힘들다. 생각 보다 감정이 궁극적으로 유권자의 후보 지지도에 더욱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마음과 생각은 현실에서 종종 엇박자를 일으킨다. 가령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밉고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싫고 미운 감정은 편협한 마음이고 그래도 공정하게 배려해 줘야한다는 원칙은 정의로운 생각이다. 생각해 보면 미운 감정과 공정한 생각이 교차하게 만드는 대상은 인간사는 세상에 무수하게 많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종차별적인 마음과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마음과 생각의 모순과 엇박자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위선의 미덕’이다. 속마음으로 특정 인종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을 생각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은 무거운 처벌을 받게 한다.
위선의 미덕은 밉고 싫은 생각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말해 편협한 마음이 세상의 생각을 지배하게 만드는 ‘진솔의 악덕’ 보다는 확실히 공공 이익에 부합한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속도 옳고 겉도 옳다면야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종종 나쁜 마음을 가지게 되는 인지상정을 감안하면 겉으로나마 옳은 마음이 지배하도록 하여 나쁜 속마음을 단속하고자 하는 것이 ‘위선의 미덕’이 들려주는 지혜이다.
참여정부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지금, 대통령과 언론 관계 문제가 심심치 않게 논의되고 있다. 현상적으로 보면 정부 쪽에서 먼저 언론과의 ‘건전한 긴장관계’를 제시했지만 결과적으로 특히 시장 지배적 신문들과 악의적인 적대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보수 신문들과 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어야 한다는 주장과 보수 신문들을 확실히 우격다짐을 해서라도 ‘개혁’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히 분분하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의 보수 신문들의 노골적인 편파 보도와 대통령의 견고한 언론 비판 의식 등을 감안해 보면 우호 관계도 통제 관계 모두 비현실적인 몽상에 불과해 보인다. 차라리 서로가 마음으로 미워했던 청와대와 보수신문이라면 형식적으로나마 서로를 존중해 주는 ‘위선의 미덕’ 자세라도 견지하는 것이 시민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참여정부하에서 대통령과 언론은 상대방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출발했다가 이내 실망으로 돌아서면서 과도한 집착 현상이 발동한 것이 아닐까. 어찌됐든 대통령과 언론은 미움과 적대가 싹트고 확산되어 상호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서로 싸우고 공격하면서 둘 사이는 이별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미움과 싫음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고 말았다. 속마음이 그러했듯이 대통령과 언론 관계는 겉으로도 나빴다. 둘 사이에 ‘위선의 미덕’이 자리할 공간이 없었다. 그 사이에 낀 시민들은 그래서 불행했다. 많은 시민들이 대통령을, 그리고 언론을 떠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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