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측에 억류된 인질석방 문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탈레반측 대변인이 배형규 목사를 살해한데 이어 추가로 또 1명을 살해했다고 지난달 31일 새벽(한국시간) 발표했다.
한국기자협회는 탈레반측에 무고한 인질을 하루 빨리 조건 없이 석방해줄 것을 촉구했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납치극은 야만적 행동이자 인간존엄을 짓밟는 행동이다. 납치극은 어떤 명분,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입장표명과 함께 인질문제 보도에 있어 각 언론사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주길 다시 한 번 당부한다. 지난달 26일자 인질문제에 대한 일부 국내 언론보도는 사실을 철저히 확인하지 않은 채 ‘지르기식’으로 보도하는 국내언론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해서 씁쓸하다. 국내 한 통신사가 25일 저녁 확인되지 않은 ‘인질 8명 석방’ 정보를 낙관적으로 보도했고 이후 2시간 반 가까이 전 방송사들이 이를 앵무새처럼 리포트했다. 외신들도 덩달아 재인용, 보도했다.
특히 인질사건 발생 직후보다 ‘아니면 말고식’으로 질러놓고 반응을 보여온 외국 언론들은 잦은 미확인 보도로 우리정부의 인질구출 전략에 많은 혼선을 초래했다. AP통신이 30일 가즈니 주의 마라주딘 파탄 주지사의 말을 인용해 협상이 이틀 연장된다고 보도했지만 그 와중에 또 한명이 피살됐다.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탈레반측은 고도의 심리전 차원에서 국내외 언론들을 이용하고 있다. 아프간 정부측에 수감된 자신들의 동료를 구출하고 더 많은 돈을 얻어내기 위한 일환으로 언론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들은 이런 상황을 충분히 감안해 사실에 기초한 보도에 충실해야 한다. 객관적인 상황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마지막까지 확인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특히 이 문제에 대한 보도과정에서 인질이 무사히 구출되는데 도움이 되는지도 잘 따져보고 보도해야 한다.
또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정치적 역학관계 등 근저에 깔려있는 상황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이번 사태를 봐야 한다. 각 계에서 활동 중인 아프간 전문가들을 활용해 깊이 있는 기사를 다뤄야 한다. 특히 이번 문제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아프간 정부와 그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 측의 전략도 냉정하게 분석해내야 한다. 그리고 인질석방을 위해 적극 협조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아울러 현지의 부정확한 상황을 무책임하게 흘리고 떠보는 식의 외신보도를 가려내는 눈도 필요하다. 특히 한국인질 보도를 무한정 외신들에게만 맡겨 놓는 것은 한국 언론으로서 부끄러운 것이다. 외신들에게는 인질 문제가 큰 사건이긴 하나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이 문제의 엄중함에 대해 당사자인 우리만큼 무겁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는 우리 기자들이 아프간 현지에 들어가는 것을 더 이상 막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군인들은 여전히 아프간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지에 들어가는 우리 언론인들의 목숨이 위험해서, 혼선을 초래할 수 있어서 아프간으로 출국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처사다.
언론인의 신변에 위험이 따른다면 전쟁을 취재하는 종군기자 개념의 연장선에서 취재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해당업무를 커버하는 우리기자들이 풀(pool)을 만들어서라도 현장을 누비게 해야 한다.
우리국민의 문제를 외국기자들에게만 계속 맡겨 놓는 것은 이 땅에 사는 대한민국 언론인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운 행동이다.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용기있는 한국 언론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우리기자들의 아프간 취재요청에 대한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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