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
|
얼마 전 일본의 주요일간지를 인터뷰하기 위해 도쿄에 다녀왔다. 요즘 엔화 가치가 떨어져서 너도나도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고 하는데, 그런 한가롭고 팔자 좋은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쨌든 나 역시 도쿄 물가에 그다지 마음 졸이지 않고 지낼 수가 있었다. 90년대 초반, 도쿄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 새로운 상황이 못내 신기하기조차 했다. 일본의 톱 3를 차지하고 있는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등을 인터뷰하러 가면서도 별로 주눅이 들지 않았다. 한결같이 인터뷰 일정을 잡기가 매우 까다로웠기에, 도쿄을 향하면서 인터뷰에 대해 적잖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좀 모자란 사람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쇼핑하러 한국사람들이 일본에 몰려간다는 이 희한한 광경이 왠지 일본을 대하는 내 가슴을 펴게 해주었던 듯 하다.
그러나 나의 펴진 가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 신문사, 한 신문사, 인터뷰를 해나갈수록 야속한 상대가 바로 일본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적어도 신문에서는 그랬다. 고백하건대, 난 한국 신문이 처한 ‘신문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에서도 시스템에서도, 한국과 가장 유사한 곳이 아무래도 일본이 아닌가 말이다.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들어보면 우리가 적용할 만한 좋은 방안을 적어도 몇 가지는 ‘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인터뷰 결과, ‘신문의 위기’라는 표현은 일본에선 생소한 것이었다. 일본 신문은 판매부수가 급감하지도, 포털이나 무료신문에 의해 기반이 위협을 받지도, 신문에 대한 독자와 사회의 신뢰가 약화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내 간절한 ‘충고’에도 그들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했다. 한국과 일본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간 내가 바로 보지 못했던 일본 신문의 근본적인 힘은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신문이 제공하는 뉴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 신문사의 ‘페어 플레이’, 기자라는 업무에만 충실한 ‘작지만 강한’ 기자들.
일본 사람들은 뭔가를 항상 읽어야만 한다고 한다. 문고판 소설이든 만화든 신문이든, 전철 안의 그들은 정말로 뭔가를 항상 읽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에서 무료신문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벼운 정보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단순한 정보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일본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가지만 잘 해서는 경쟁사회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아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회 전반에 대해 두루, 그리고 깊이 알아야 자신의 생활은 물론, 사회구성원으로 역할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이 있기에 그들은 변함없이 신문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방송사 겸영이라는 경영환경을 전제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 신문사들의 ‘페어 플레이’는 신문의 위기를 남탓으로 돌리기에 바쁜 한국 신문사들이 뼈아프게 들어야 할 부분이다. 일본 신문사들은 이익이 된다고 해서 아무 일에나 뛰어들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아무 일’이라 함은 정통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종류의 일을 말한다. 가치 판단이 개입되는 문제이긴 하나, 돈이 된다 해서 ‘최고의 일간지’를 표방하는 신문들이 스포츠신문을 발행하지 않으며 따라서 무료신문을 발행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자기네 신문사에 유리하다고 해서 다른 신문사들 몰래 포털에 기사를 대주거나 하지도 않는다.
한국 신문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내게 한국 특파원을 오랫동안 했던 이가 매우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는 한국의 기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 기자들은 너무 엘리트인데, 이것이 결코 한국 신문과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란다. 중앙일간지 기자 대부분이 몇몇 특정대 출신에, 요즘엔 그도 모자라 대학원까지 마치고 기자가 되는 한국의 현실이, 그가 보기에는 한국 언론과 사회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기자가 수행하는 일 자체가 엘리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그의 곁에서, 수습기자 합격자 명단이 지면을 차지하는 한국 신문을 보고 “정말이지 너무나 놀랐었다”고 하는 ‘작지만 강한’ 일본 기자가 웃고 있었다.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