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테러와 언론의 국익 보도


   
 
  ▲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아프가니스탄 한인 피랍 및 피살 사건은 21세기 세계화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충격과 우려와 당황, 절망, 분노와 같은 복잡 미묘한 감정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를 보도하는 우리 언론 또한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불만족스럽고 혼돈스럽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우리 언론 보도는 우선 신속-정확-사실 보도를 해야한다는 강박은 있으되 그럴 만한 능력이 안돼 답답했다. 언론은 또한 언론보도가 어찌됐든 피랍자 조기 석방에 도움을 줘야할 터인데, 정작 지금과 같은 보도방식이 인질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었다.

우리 언론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번 사건 처음부터 한동안 특종 경쟁의식에서 비롯된 신속보도 강박과 뾰족한 해결책이나 도와줄 방법이 없이 “석방 염원”의 감정만을 되뇌는 매우 낮은 차원의 저널리즘 영역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잘 알려지지 않는 타국에서 발생한 단순한 자국민 인질사건이 아니다.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탈레반에 의한 한국국민 피랍 및 피살 사건은 세계화시대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종의 국제 테러의 성격을 띠고 있다. 2001년 9·11 테러에서 목격했듯이 테러는 이른바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점차 빈번하게 나타나는 새로운 종류의 전쟁양식으로 규정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탈레반 한국민 테러사건은 단순한 피랍사건이 아니라 세계화 공간에서 치르고 있는 매우 소규모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언론은 관련 정보를 취재할 능력은커녕 테러사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정보를 적절히 걸러내는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나라밖 분쟁지역에서 발생한 국가적 위기 사태에 관한 국내 언론의 취재능력 부재는 우리 언론의 취약한 국제경쟁력을 드러냈다. 한국 언론은 외국 언론의 오보를 확대재생산하는 함정에 여지없이 빠져들었다.

우리 언론은 안타깝게도 정보력 부재뿐만 아니라 외부세력의 테러위협에 대해 국가적으로 현명한 대응을 하도록 도움을 주기는커녕 스스로 분열을 자초하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언론 보도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외부의 공격을 받은 어떤 사회든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내부의 희생자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이다. 희생자를 비난하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적전 분열 효과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아프간에서 한국인들을 납치하고 살해한 범인은 누가 뭐래도 탈레반이다. 어찌됐든 범인이 명확한 마당에 피랍자와 그 가족, 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 피해자 일수 밖에 없다. 물론 납치자이자 살인자인 탈레반을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사회가, 언론이 희생자들을 비난하기 시작하면 불행을 자초하는 꼴이 된다.

처음 피랍 뉴스가 날아들 무렵 일부 시민들과 언론이 피랍자들이 위험지역 입국과 과도한 선교가 납치를 자초한 꼴이라며 성토한 것은 따라서 어리석은 주장이다. 물론 피랍자들이 사전에 좀더 신중했더라면 불행한 사태를 면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가해자가 명백한 마당에 우리편 희생자를 공격하는 것은 자제했어야 마땅했다.

또한 일부 언론이 피랍사태와 관련해 입국 제한 조치를 엄하게 하지 않은 한국 정부, 인도주의적 임무 수행을 위해 파견된 아프간 주둔 한국 부대, 심지어 아프간 전쟁을 일으킨 미국 등을 사태의 원인인 것처럼 보도한 것은 엉뚱하고 어리석은 보도에 해당한다. 원인으로 지목한 예들은 피랍이 발생한 정황은 될지언정 누가봐도 진정한 피랍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은 나중에 다른 기회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사건은 국제화 시대에 국가적 위기 사건의 성격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우리 언론은 여전히 자국, 자사의 우물안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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