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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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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1960~70년대 공항출입 기자를 경험했던 한 선배가 생전에 식사자리에서 구수하게 들려주던 공항 특종 무용담이 생각난다. 당시 공항 출입 기자들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외모의 외국인의 입국을 먼저 보도하기 위해 특종 아닌 특종 경쟁을 했다는 것이다. 무려 2미터가 넘는 벽안(碧眼)의 서양신사 모씨가 오늘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는 식의 기사들이 당시 공항출입 기자들의 단골 특종기사가 됐다는 얘기.
요즘의 공항출입 기자의 특종은 어떤 것일까. 오랜 세월에 걸쳐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 또는 출국하는 사람들에 대해 언론들이 무엇을 어떻게 보도했는가를 살펴보기만 해도 한국 사람들의 국제화 의식 변화에 관한 그럴싸한 풍속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뉴스 가치는 기사의 취사선택과 기사의 방향을 결정한다. 뉴스 가치는 또한 당대의 사회 가치 체계를 반영하며 또 동시에, 사회의식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2미터 장신의 서양 신사가 기사가 된 것은 그때 그 시대의 그만큼의 의식체계를 반영한 것이다. 이제 그런 기사가 다소 코미디처럼 들리는 것은 그만큼 현재의 사회의식과 가치가 변화하고 발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언론의 뉴스 가치는 어떨까. 조금만 역사의식을 가지고, 또는 잠시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우리 기사를 살펴보는 일은 언론의 자기반성, 자기 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가령, 가짜 학력 사건들은 미래 세대들이 현 사회에 던질 수 있는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능력 보다 학력을 중시하는 웃지 못 할 코미디 사회의식을 만들어지는데 언론은 자유로운가. 오늘도 언론은 미래세대에게 상당한 코미디 거리를 제공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신문의 인물동정 지면에서 종종 발견되는, 모씨, 특히 연예인이 “대학교수 됐다”는 제목의 기사들에서 60년대 그때의 2미터 서양신사 기사가 떠오르곤 한다. 이런 코미디가 없다.
그런 기사에서의 대학은 연구하고 교육하는 곳이 아니라 무슨 권력기관 같은 곳이고, 교수는 연구자나 교육자가 아니라 하나의 감투가 된다. 당연히 대학교수가 된 모씨가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잘 가르쳐 사회에 기여할 것인지는 관심도 없다. 대학들도 유명인들의 이름을 빌려 대학 홍보를 해보겠다는 얄팍한 장삿속으로 이전의 시간 강사에 겸임교수란 계급장을 달아 보도자료를 뿌렸다. 그렇게 해서 대학교수 훈장을 달았던 모씨는 이제 또 자신의 대학학력이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져 곤욕을 치르고 있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에 혼나고도 우리 언론은 논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실리면 무슨 큰 스포츠 기록 경신을 한 양 보도하고 있다. 과학의 내용이나 연구 업적의 가치를 따지지 않고 유명 학술지에 실렸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는 이런 보도는 과거 자식을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에 보내놓고 자식농사 성공했다는 만족감에 자식이 놀고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는지 전혀 모른 시골 영감의 신세와 다를 것이 없다. 최근에는 노벨상 후보감이라고 언론에서 떠들던 이론이 한국물리학회 검증 결과 과학적 가치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무엇이 됐다”에 얄팍한 뉴스가치에 매몰된 뉴스는 그래서 무엇을 위한 것인가하는 진정한 가치에 대한 물음이 없기 때문에 무식과 무지의 함정에 빠져들고 시대착오적 기사를 만들어 내곤 한다.
우리 언론들은 총리나 장관의 바뀌고 누가 새로운 각료가 되느냐에 너무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런 풍토가 정권이 지나치게 자주 장관을 바꾸게 하는데 일조한다. 미국 언론이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장관이 바뀔 때 새 장관 보다는 퇴임하는 장관을 인터뷰하는 것을 보고, 또 죽은 자의 업적과 가치를 기리는 기사를 과감히 1면에 올려 살아있는 자에게 교훈과 지혜를 제공하는 것을 보고 사회 가치 측면에서 한수 위임을 느낀 적이 있다.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면서 언론보도의 불공정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대선보도의 편파 문제는 한마디로 언론이 누가 어떤 일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보다 누가 될 것인가에 모든 것을 쏟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지금이 어느 때인데 또 편파 보도를 하려고 하느냐하는 지탄을 받게 된다. 지금 우리 언론은 “지금 이것이 왜 뉴스가 될까”하는 자기성찰적 질문을 필요로 하고 있다. 반성과 성찰이 없는 언론은 스스로 뉴스거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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