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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순 한국경제 미디어연구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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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은 지난 1개월간 역사적인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대통령 선거와 신정아 사건에 몰입했다. 권력의 향배와 비리의혹 사건도 언론이 다뤄야 할 소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정치에 개입하고 선정주의가 기승을 부린다는 비판으로 언론의 신뢰도만 금이 가고 있다. 더구나 남북관계를 다루는 관련 뉴스도 양과 질에서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북관계의 새 틀을 짜는 남북정상회담은 21세기 한반도를 대변하는 표제어로 부상한지 오래다. 2000년 첫 정상회담 이후 남북교역 규모는 14억 달러, 인적 교류는 금강산 관광객 1백50만명을 제외하고도 10만명을 넘어 섰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전 반세기 동안 남북을 오간 사람이 2만명에 미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차 정상회담은 남북관계를 기록한 뉴스 콘텐츠의 또다른 역사를 만들 전망이다. 남북교류의 내실을 다지고 그 안정성을 확보하는 전기를 마련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열강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고, 공존공영과 평화체제의 정착으로 가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 어느때 보다 남북관계를 다루는 언론의 자성과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는 1995년 공동으로 만든 북한관련 <보도 제작준칙>을 통해 남북간 화해와 신뢰분위기 조성에 기여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언론보도에 있어 통일지향적 원칙의 중요성을 가다듬은 바 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여전히 갈등과 적대적 관점을 대북보도에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외면하고 깎아 내리는 흐름도 넘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언론사의 정파적 이해에 따라, 고질적인 안보상업주의 속에 남북관계를 봉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남북정상회담 보도 이렇게 하자> 토론회에서도 언론이 남북문제에 대해 열린 공론장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점이 필요하고, 군사적이고 영토적 맥락에서 동원된 정치이데올로기의 차원이 아니라 남북이 능동적으로 주도하는 민족경제와 공생의 패러다임이 절실하다.
현재 시장과 뉴스 소비자들은 언론이 보여준 반목과 갈등 고조, 대결지향적 콘텐츠의 범람에 지쳐 있다. 과거에는 언론의 북한보도가 영향력과 호소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올드미디어가 북한정보를 독점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제 북한 관련 다양한 정보와 해박한 분석을 담은 콘텐츠는 시장 안팎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정략적인 대북 보도의 설 자리가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 대신 남북관계를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콘텐츠의 필요성은 증대하고 있다. 그러자면 언론사 내부에 북한 콘텐츠 생산과 관련 투자가 시급하다. 제3세계 뉴스의 부족을 아쉬워 했던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처럼 북한 콘텐츠의 가치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공존번영과 통합의 북한 콘텐츠 선점은 아주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 20세기 냉전의 주술에서 쉽게 벗어날지는 의문이다. 남북관계를 주도할 역량을 가졌음에도 분단체제와 낡은 법의 잣대에 안주하려는 풍토가 여전해서이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 뉴스에 관한한 언론과 뉴스 소비자간 갈등과 경쟁이 재연될 수 있다. 차별성 없고 심층성이 부족한 북한 뉴스는 뉴스 소비자의 준엄한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한일월드컵, 탄핵정국 때처럼 모든 뉴스를 선별하고 여론을 스스로 만든 뉴스 소비자의 창조적 힘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것은 뉴스가 언론만의 소유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구나 뉴스 소비자와 네트워크는 한 몸으로 움직이며 세를 불리고 있다. 뉴스 소비자의 위상과 안목이 이슈가 생길 때마다 크게 개선되고 있다.
올드미디어와 기자들이 그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뉴스 콘텐츠의 새 패러다임을 수렴하지 못한다면 뉴스 소비자와 불화(不和)는 피할 수 없고 결국 미디어시장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진순 한국경제 미디어연구소 기자(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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