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사에는 때가 중요한 법이다. 바야흐로 60년이 넘는 한반도 분단 시대의 질곡이 점차 우리 앞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닌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돈 오버도퍼가 최근 남북정상 합의문에 대해 논평한 말이다. 그 단적인 예가 정상회담 합의문 바로 전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외교적 승리’라고 자평한, 6자회담 2단계 북핵 불능화 조치에 대한 합의문이 발표된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보수 언론은 이같은 도도한 시대적 흐름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알면서도 굳이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논평도 제대로 안한 보수 신문들은 정상회담 합의문에 대한 평가에서도 현정권에 대한 호불호의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듯하다. 벌써부터 비용 문제로 딴지를 걸고 나섰다. 시장의 기본 원리로 세상에 투자하지 않고 수익을 얻는 법이 어디 있는가. 1차 정상회담 때와 달리 뒷돈이 오가지도 않았는데 ‘제2의 퍼주기’로 몰고가려는 심보가 고약하다. 실현가능성에 대한 검증은 좋지만 아는 선수들끼리 보기에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비틀기가 심하다. 이같은 편향된 ‘반민족적’ 시각 때문에 북에서 우리 언론을 그토록 불신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 취재기자에게 돌아온다. 그동안 쌓인 남측 언론에 대한 적대감이 이번에 동행 취재한 청와대 현지 기자들에 대한 극심한 보도 통제로 나타난 것일 수 있다.
평양 영접 첫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검버섯 피어, 건강 안좋아 보여, 무뚝뚝해’ 등으로 묘사한 남측 보도에 대해 북측은 화가 많이 났다고 한다. 둘째날 김위원장의 태도가 확 달라진 것을 보면 역으로 그만큼 북측에서도 남측의 보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로서는 당장 눈에 비추고 판단되는 대로 당연한 보도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 북쪽에 대한 기사 작성에서 되도록 추측이나 추정보다는 객관적이고 사실에 기초한 보도자세를 유지해야하는 이유다. 그리고 항상 남측을 우위에 놓고 “북은 이런 면에서 우리보다 못하다, 아직도 뒤떨어져 있다”는 천편일률적 시각의 기사도 지양해야함이 바람직하다.
이번 정상회담 합의문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여러 항목의 남북간 교류를 담고 있지만 정작 6항 사회문화 부문에서 언론 분과의 교류는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아 아쉬운 대목이다. 북한이 동독내 상주 서독 기자들의 보도로 인해 베를린 장벽 붕괴로까지 이어졌던 통일 독일의 사례를 참조해 언론과의 교류를 극구 꺼리는 것은 노 대통령의 말대로 “역지사지”해볼 때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자유무역이나 개방 같은 것은 모두 사실 힘이 있는 쪽,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쪽에서 제기하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북측이 개혁개방이라는 말을 싫어한다는 말을 되새겨보고 우리가 할 보도도 기본적으로 이같은 입장에서 하면 북측이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정도에서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 또한 신문·방송협회 대표들이 평양에 가서 분과별 간담회 도중 평양에 상주기자를 두고 프레스센터를 건립하며 기자교류를 하자는 내용의 제안을 했지만 기껏해야 5분간의 발언으로 그야말로 간담회에 그치고 말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기자협회는 이미 숱한 실무접촉을 거쳐 지난해 11월 금강산에서 1차 남북 언론인 대회를 가진 바 있다. 당국간 공식 언론교류에 대한 합의가 아직은 멀다고 주저앉지 말고 할 수 있는 바부터 차근 차근 끈을 이어가고 바람을 불게 한다면 남북간 자유로운 언론교류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향후 각종 분과와 경협 사안에서부터 활발한 취재 활동이 수반될 것이다. 보다 많은 취재 기자들이 북한을 찾아 열심히 ‘각개약진’해가며 남북교류를 보도할 때 통일을 가로막는 냉전의 벽을 하나하나 허물고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일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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