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의 진실과 언론의 신뢰


   
 
  ▲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검찰의 BBK 수사결과 발표가 있은 뒤 며칠 후 대학생 10여명과 차를 마시며 즉석여론 조사를 해 봤다. 검찰의 발표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5점 척도 (매우 신뢰한다, 다소 신뢰한다, 그저 그렇다, 다소 불신한다, 매우 불신한다)에 맞춰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결과는 나를 놀라게 했다. 신뢰한다는 쪽은 단 한명도 없고 ‘그저그렇다’에 몇 명 손들고 대다수가 불신한다는 것이 아닌가.

요즘 대학생들은 보수편향이 우세하다. 가령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폐지 반대가 많이 나온다. 대선 후보 가운데서도 보수 후보, 특히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높다. 그런 대학생이기에 당연히 검찰의 발표를 믿는 쪽이 대다수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의견을 말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대학생들은 검찰 발표에 수긍이 되지 않는다며 갸우뚱할 뿐만 아니라 요즘 대학생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분노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위태로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지탱, 지속 가능한가 보다. 뭔가 석연치 않지만 그래도 검찰을 믿어버리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한 일일지 모르지.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순응의 피난처를 찾고자 했던 내 마음 한구석의 유혹은 순수한 대학생들의 문제제기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대학생들은 정파에 관계없이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라 말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검찰의 BBK 수사 결과 발표는 나름대로 사실 확인과 그에 따른 일말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사실 확인에 근거했다는 검찰의 BBK발표는 대다수 국민들을 설득하고 믿음을 심어주는데 실패했다. 아마도 그것은 검찰이 확인하고 싶은 사실만을 수사했거나 알리고 싶은 수사 결과만을 발표했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이 진실을 수사하지 않았고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정황적 근거는 꽤 많이 밝혀진 편이다. 또한 검찰이 공명정대한 수사에 매진하기 보다는 정치적 판단을 우선시하거나 아예 정파적으로 편향됐다는 주장을 믿는 국민이 더 많은 실정이다. 결국 검찰은 대선 판도에 휩쓸려 검찰로서 진실추구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민주화 이후 최대의 신뢰 위기에 빠져 있다.

BBK와 검찰의 BBK 수사를 보도하는 언론의 신세도 검찰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언론은 진실추구 차원에서 BBK를 보도해 왔는가. 기자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부 탐사보도를 추구한 언론을 제외하곤 BBK 보도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야무지게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보다는 정치권이나 검찰이 흘려주는 기사를 그저 중계식으로 보도한 경우는 차라리 낫다.

언론이 오히려 BBK의 진실을 은폐하고자 한 듯 축소 보도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과장 보도한 경우도 있다. 때문에 언론이 BBK를 보도하기 보다 언론이 특정 후보를 편드는데 이용하는 정파적 편향 보도를 일삼았다는 비판도 거세다. 특히 이른바 시장지배적 보수 언론의 BBK 보도를 분석해 보면 이명박 후보의 편들기는 노골적이다. 2002년 선거에 비해 다소 교묘해지긴 했어도 보수 신문의 정파적 편향은 여전하다. 신문의 정파적 편향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신문의 정파적 편향에 휘들린 언론의 진실보도 정신은 실종되고 없다.

엊그제 공발연을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가 공영방송이 김경준씨 입국 이후, 대선관련 보도의 절반가량을 BBK에 할애하는 편파 보도를 했다고 비판했다. 보수 신문들은 이를 다시 받아 공영방송이 BBK와 관련한 편파보도를 했다고 크게 보도했다. BBK를 많이 보도하는 것이 편파인지 적게 보도하는 것이 편파인지 혼동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정답은 따로 있다. BBK를 얼마나 보도하는 것이 언론 자유의 존재 이유인 진실추구 노력을 충족하는 것일까.

검찰이든 언론이든 정치적 편향은 기실 큰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위기는 정치적 편향에 압도되어 검찰과 언론의 존재이유인 진실추구 노력을 포기한 그 지점, 바로 신뢰 위기에서 비롯된다. 사실 누가 대통령이 된들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검찰과 언론의 신뢰가 무너지면 경제가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험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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