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들이여, 검사와 판사를 구별하자"

언론의 BBK 관련보도를 지켜보며


   
  ▲ 박형상 한국기자협회 자문변호사  
 
한국언론의 사회 감시기능은 종종 찬탄할만하나, 어떤 때는 꽤 착잡한 기분이 든다. 번거로운 말을 접어두고 한번 짚어보자.

과연 우리 기자들은 한국 검사와 한국 판사의 직분을 제대로 구별하는 것일까?

양쪽 모두 ‘사법시험, 사법연수원’을 거치니 ‘다 같은 사법기관’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아닐까? 얼마전 수습기자 강의에서 ‘검사가 사법부에 속한다’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언론보도에서는 ‘검사 권한’으로 ‘구속’하여 ‘사법처리’를 끝내는 식이다.

구속영장에 관련하여 ‘청구·발부·집행’이 분리되지 않고 있다. ‘사전’에 발부되는 것이 구속영장의 본질적 원칙임에도 ‘금명간 사전구속영장’이라는 말로 검찰 의도만을 앞질러 대서특필한다.(우리 형사소송법에 ‘사전구속영장’은 없다.)

판사가 영장청구를 기각시키면 ‘검·법 갈등’으로만 치부한다. 누군가가 구속되는 그 순간은 최대의 뉴스가치를 갖게 된다. 구속된 후부터는 대부분 유야무야 용두사미이다. 나중에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무죄 기사’는 한구석에 1단으로 처리된다.

이번 BBK사건을 살펴보자.

검사의 수사발표가 곧 판사의 재판선고는 아닐 것임에도 일부 언론들은 모든 진위가 가려진 듯 ‘의혹 끝’이라고 단정한다. ‘국가기관의 발표를 믿지 못하냐’고 오히려 다그친다. 장차 있게 될 형사법정이라고 해봐야 검사의 수사발표를 추인해주는 장소로 여기는 태세이다.

‘검사가 제기하는 공소사실’이나 ‘판사가 인정하는 범죄사실’이나 오십보백보로 여긴다. 한국 기자들은 굳이 검사와 판사를 구별할 필요성을 못 찾는 것 같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한국 법원이 그간에 자초한 책임이 크다.)

다시 정리해보자. 검사의 수사발표라함은 ‘수사주재자로서 검사’의 직무수행결과에 불과하다. 때론 ‘검사스런 일면적 진실’일 수 있다. ‘기자의 사실’이 ‘검사의 사실·판사의 사실’과 판박은 듯 같을 수는 없다. 그렇게 삼위일체화 되거나, 기자·검사가 사이좋게 손맞추게 된다면 아마 독재국가정도일 것이다.

기자는 ‘검사나 판사가 놓친 사실’을 재발견해 볼 수 있는 점에 그 직분의 특수성이 있을지 모른다. 모름지기 기자는 ‘상당한 이유’가 뒷받침된다면 늘 ‘의혹’을 제기해야 한다. 김경준·이명박 사이에 일어난 실체적 진실을 장담할만한 확증이 없음에도, 오히려 검찰발표에 배치되는 일부 물증이 있음에도 ‘검사의 수사발표’만을 그대로 ‘받아쓰기’하는 처사는 납득되지 않는다.

노파심에서 한 말씀드린다. 대한민국은 ‘3권 분립국가’이다. 한국 검사는 행정부에 속하고, 한국 판사는 사법부이다. ‘행정부를 구성하는 정부조직법’의 ‘법무부장관’이 ‘검찰사무’를 관장한다. ‘검사 직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검찰총장’은 ‘검찰청법’에만 정해졌을 뿐이다.

요컨대 검사가 행사하는 검찰권은 행정권에 속한다. 그러나 ‘대법원장’과 ‘법관의 독립’은 ‘헌법’에 근거하며, 헌법 제101조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였다. ‘헌법이 정한 사법권이나 법원’에 검찰권이나 검사가 속 할리 없다.

그러니 지난번 이용훈 대법원장이 사법권 본질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법조3륜을 부정했던 비유’는 원론적으로 옳다. 검사는 단지 ‘그 검찰권이 사법권 행사에 밀접하게 영향을 끼치는 점’에서, ‘본래의 사법기관은 아니고 행정기관이지만, 법과 정의에 따라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준(準, quasi)사법기관’으로 칭해질 뿐이다. 그러니 사법권 행사에 있어 검찰과 법원을 대등한 당사자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기자들이여, 검사와 판사를 구별하자.

연줄로 얽혀진 우리 사회라면 검사와 판사를 아예 처음부터 따로 뽑자고 기자쪽에서 문제제기해 볼만도 하겠다. BBK 수사결과를 놓고서 곧장 ‘검찰 탄핵소추’로 밀어붙였던 신당의 정치적 태도도 못마땅하지만, 검찰의 수사발표를 판사의 재판선고로 받아들이는 일부 언론의 파당적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개정 형사소송법이 2008.1.1.부터 시행된다. ‘미합중국인 피고인 김경준’의 소송전략에 따라서는 ‘한국 형사법정의 공판중심주의·참고인 진술조서·증인신문제도’ 등의 제도적 명암도 드러날 것이다. 검찰이 ‘대질없이’ 비공개로 처리한 ‘참고인 이명박의 서면진술’은 공개법정에서 ‘증인 이명박의 법정증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제안드린다. 대선결과에 관계없이, ‘BBK 의혹보도 및 관련 인터뷰기사’에 대해 한국기자협회 차원의 토론회를 개최해 보자. 박형상 기자협회 자문변호사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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