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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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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어려운 얘기를 꺼내야겠다. 자식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예외 없이 시달리고 있을 사교육 문제다. 사교육. 굳이 말하자면 학원과 과외의 동의어 정도 되겠다. 내가 여기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사교육 자체가 아니다. 사교육을 담아내는 언론의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게는 고 1 딸과 중 1 아들이 있다. 교육에 대한 전문지식은 부족하지만, 나는 내 아이들이 인생을 준비하는 교육을 어떤 식으로 받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은 가지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정신 나간’ 학부모들 사이에서 함께 미쳐가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반발심이 생기기도 해서, 되도록이면 아이들을 학원으로부터 멀리해서 키우려고 나름대로 애써왔다.
그러나 지난 가을부터 그 소신을 지켜내지 못하고 결국 5시부터 12시까지 하는 학원에 둘째를 보낸다. 중하위권에서 별반 나아지지 않는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1학년이니 아직은 좀 놀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내가 한심해 보였는지 선생님은 진지하게 충고했다. 지금까지 학원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미 늦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열심히 시키라는 것도 아니고, 학교 선생님의 말이라고 하기엔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딸 아이는 어떤가. 내신 50% 반영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고 순진하게 ‘일반고’에 진학했던 아이는 이미 공부를 포기해버린 90% 속에 묻혀서 여유만만 생활을 하고 있다. 고 1인 아이가 학원 하나 안 다니고 이른바 ‘야자’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다는 얘기를 그 선생님이 들었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어쨌든 딸 아이도 이번 겨울 방학부터는 종합학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모르긴 몰라도 집에서 보는 신문의 영향이 컸다. 요즘 신문들은 대부분 교육 섹션을 발행한다. 아무리 신문 보기를 비판적으로 한다고 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 들어오는 교육 섹션의 내용은, 중고생 자식을 둔 엄마로서 무시하고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시험을 잘 보려면, 방학 동안에 선행학습을 하려면, 영어와 논술을 잘 하려면 등의 기사는 양반이다. 조금이라도 똑똑한 아이라면 특목고를 가야하고 조금이라도 능력이 있는 부모라면 유학을 보내야한다고 주장하는 무수한 기사들. 그 곁에 실린 관련 업체의 광고. 내가 봐도 풀기 어려운 고난도 문제들. 이들을 보고 있자면, 그래, 어디 학교 교육만으로 되겠어?, 역시 학원에서 좀더 배워야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거기에 더해서 끊임없이, 집중적으로, 해도 너무 한다 싶을 만큼 지속적으로 소개되는 특목고와 이른바 외국 ‘명문대’ 유학 정보, 그리고 마침내 꿈을 이룬 ‘성공한’ 부모와 ‘완벽한’ 아이들 이야기가 전범처럼 제시되면 정녕 내가 그동안 지키고자 했던 원칙과 소신이 하잘 것 없이 여겨지고, 한낱 게으른 엄마의 자기변명에 불과했던 게지, 하며 아이들을 바보로 만든 나쁜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부여받고 자책하고 회의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의 중요성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교육에 대한 언론의 역할도 그만큼 중요하다. 입시제도에 대해 언론이 이러니저러니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그저, 분명 기형적으로 거대한 이 나라 사교육 시장판에 끼어들어 뭐 좀 먹을 것 없나 하고 기웃거리는 언론의 행위와 사교육 판에서까지 영향력을 휘둘러보려고 하는 언론의 천박한 의도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경쟁 위주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잘 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그게 독자들이 원하는 정보라고? 아무리 거창한 명분을 갖다 붙여도 지면을 통해 사교육을 권장하는 언론은 분명히, 크게 잘못 되었다. 교육을 통해 삶의 철학이 형성되고, 인간과 사회의 모습이 결정된다. 사교육 시장에 빌붙어 헛된 욕망을 추동하는 언론은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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