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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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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는 신참 박사(fresh doctor) 신드롬이란 것이 있다. 박사 학위를 따는 때에서는 풀이 죽어 선배 박사들에게 고개를 숙이다가 막상 학위를 받은 다음에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똑똑한 학자인양 행세를 한다. 나이든 학자들은 구악이고 그들의 논문들은 낡아빠져서 못쓴다. 신참박사들은 전통과 과거와 단절을 한다. 그리고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숙제를 내주며 괴롭힌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진보 정부 10년 이후 보수 정부로 인수인계되는 과정은 당연히 변화와 혁신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언론, 신문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예상대로 이명박 정부 들어서 언론정책 전반, 그 중에서도 신문 정책의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정권 교체는 사회문제에 대해 다른 시각, 다른 해법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과정에서 돌출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과거의 정권, 과거의 정책과의 정책의 “단절”에 관한 수사(rhetoric)는 주의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발표와 자사의 이해관계와 감정을 실어 재해석해낸 언론 보도들은 “국정 홍보처 폐지”, “취재 선진화 방안 원상복귀” “신문법 폐지”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을 얘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과거 10년, 특히 지난 5년간 노무현 정부의 언론 정책을 무위로 돌리고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심사이다. 매우 명쾌하고 시원해서 좋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폐지”와 “원상 복귀”는 정치적 구호나 신문기사의 선정적 제목에 그치기 십상이다.
폐기는 결국 지금까지의 진보 정부의 정책 노선과 선을 긋고, 뭔가 단절을 표시하고 싶은 심리에서 나온 정치적 용어이다. 과거 정부에 대한 정치적 비난과 질책, 공박을 담은 “말”이지 정책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단절이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단절이야 말로 과거 언론정책에 대한 몰이해를 낳고, 그것이 바로 진보정부의 언론정책의 핵심적인 문제점이었던 것인데, 그런 문제점을 이명박 정부가 고스란히 이어받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단절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과거와 단절하려면 할수록 과거의 단절의 문제를 되풀이하는 꼴이 되어서 단절이 되지 못하는 역설. 결국 과거의 언론정책이라는 것은 무조건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극복할 때 단절의 역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이 진정 성공 시대를 열려면 과거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 무조건 부정과 단절을 선언하기 보다는 과거 정부의 문제를 꼼꼼히 따져 버려야 할 것은 제대로 버리고 최소한 기능적, 실용적 측면에서라도 계승할 것은 전향적으로 계승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새 언론정책이 진정 선진적인 것이 되려면 과거에도 되풀이됐던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는 언론정책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해야 한다.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서서 선진화로…. 산업화 시대 언론정책은 언론자유의 통제였고 민주화 이후 진보 정부의 언론정책의 핵심은 권력화된 언론 규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진화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의 핵심 가치와 비전은 무엇인가. 단절은 분명 해답이 아니다. 가치와 비전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새 정부의 언론 정책은 처음부터 위기이다. 최근의 인수위 “언론 사찰” 해프닝은 위기의 하나의 징후에 불과하다.
민주화 이후 선진화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 정책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민주화 이후에도 찾아오지 못한 진정한 민주주의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이 진정 해야 할 일은 민주화는 찾아 왔는데 민주주의의 도래를 방해 것들과의 단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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