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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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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공항으로 우리 페르시아문화탐방단을 마중 나온 주이란대사관 직원은 “국내에는 이렇다 할 소식이 없다”고 했다. “국내는 3일만 비우면 무슨 일이 반드시 터지던데…”라고 내뱉은 말은 이내 탈이 되어 돌아왔다.
11일 오전 10시쯤 귀국 수속을 마치고 집사람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당신 큰 일 났다”는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시간대별 사고일지’가 단숨에 튀어나왔다. 숭례문이 불탔단다. 그래서 폭삭 내려앉았단다. 급하게 집에 짐을 풀어 놓고 차를 몰아 광화문 회사로 내달으면서 저 너머 앙상한 몰골로만 남은 숭례문을 바라보노라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숭례문을 일러 ‘국민적 자존심’을 운위하거니와, 언제 그런 대접을 받기나 했던가? 이런 일이면 누구나 문화유산 애호를 외치지만, 오늘 이 순간 국토 곳곳에서 개발이란 굉음에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이 신음하고 파괴되며, 그 많은 현장에서 문화재야말로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주범이라고 지탄받는다는 역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문화부 장관과 문화재청장을 불러다 놓고 왜 이렇게 문화재를 엉망으로 관리하느냐고 윽박지르는 의원님들, 그들이 바로 오늘과 같은 일에 대비하자며 신청한 예산을 싹둑 잘라버린 주범이란 사실 또한 아이러니다.
2월11일을 ‘문화재 방화의 날’로 정하자고 제안했다는 어떤 정치인의 말은 귀를 의심케 한다. 2005년 4월5일 식목일 산불로 낙산사가 불탔을 때도 똑같은 말이 나오다가 작대기로 얻어맞은 거북이 머리마냥 쑥 들어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 모로 숭례문 화재는 낙산사의 재방송이다.
그 대책이라며 언론매체가 각계의 이름을 빌려 쏟아내는 제안들이란 것도 실상 다를 데가 없다. 획기적인 문화유산 재난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당위의 외침, 그것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실천요강, 그 어느 것도 숭례문은 낙산사의 아류일 뿐이다. 믿기지 않거들랑, 낙산사 화재 당시 관련 언론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단박에 안다.
비단 언론계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고질 중 하나로 ‘냄비 현상’을 거론하거니와, 지난 10년간 같은 자리에서 문화유산 현장을 지켜본 개인 경험에서도 이는 정말로 문화유산 자체를 좀 먹을 정도로 심각한 사회 병리현상이라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낙산사가 불탄 직후 일본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견학한 기사 중 한 구절에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낙산사 화재만 해도 불과 넉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이미 아득한 과거가 돼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 많던 대책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장담하건대 숭례문도 이내 잊히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국토 곳곳에는 ‘제2, 제3의 숭례문’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날 것이다. 덧붙이건대 무분별한 개방이나 지자체에 대한 문화재 관리권 이관이 이런 사태를 불러왔다는 식의 시각은 교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개방과 이관은 시대의 흐름이다. 남대문만 해도 공개 이전에도 무단침입은 비일비재했다. 중앙정부에서 관리권을 틀어쥔다 해서 이런 일이 터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어쩌면 남대문의 비극은 어정쩡한 개방이 이뤄진 데 있을 수도 있다. 경비가 허술하고 접근이 쉬워 종묘를 놔두고 남대문을 택했다는 방화 용의자의 진술이 문화유산에서 사람을 강제로 유리케 하는 구실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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