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방송인총연합회 등 언론단체 종사자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 관련 시민사회단체 회원 5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영하의 추운 날씨와 칼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국회를 향해 방송 관련 3가지 현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다. 방송 관련 3대 현안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기구화, TV수신료 현실화, 그리고 디지털TV전환 특별법 제정이다.
우선 정부조직 개편과 맞물려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안은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할 독소조항으로 가득차 있다. 지난 1월21일 한나라당이 제정한 이 법안은 방송 정책과 규제를 분리하고 방송통신위원회를 합의제 위원회로 규정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그러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방통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어 방송내용에 대한 간섭과 통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방통위의 독립성을 보장한 명문 규정도 없다. 방송의 독립성을 명백히 침해할 소지를 남긴 것이다.
또 방통위가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행정 감독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도록 했다. 정부조직법에 따라 중앙행정기관으로서 대통령의 행정감독권을 받게 하면서도 일부 업무는 국무총리의 행정감독권 아래 둬, 업무를 예속화시켰다. 대통령제 국가 가운데 방송과 통신을 대통령 직속으로 둔 나라가 없다는 점만 봐도 방통위에 대한 대통령직 인수위의 대통령 직속기구화는 이해할 수 없는 방침이다.
특히 5명의 위원 가운데 위원장을 포함해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4명까지 정부여당 몫으로 귀속했다.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은 대통령이, 나머지 3명은 국회 의석수에 따라 분배하게 해, 오는 4월 총선에서 다수당이 유력한 한나라당이 사실상 2명의 위원을 맡도록 한 것이다.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위원장은 위원회 운영에 대통령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합의제인 위원회 기능은 사실상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방송위원회는 지난 2000년 통합방송법에 따라 방송의 독립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출범했다. 이 때문에 행정부로부터 독립돼 ‘제4부’로 불리기도 했다. 방통위 설치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수많은 언론인들이 피와 땀으로 이뤄낸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이 될 것이다.
TV수신료 인상과 디지털TV전환 특별법은 민생법안이다. TV수신료는 28년째 2천5백원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KBS와 EBS는 왜곡된 재정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궁극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저품질의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또 수신료가 현실화하지 못할 경우, 궁극적으로 피해는 시청자들에게 돌아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머지않아 더 많은 수신료를 시청자들에게 부담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
디지털TV전환 특별법 역시 시청자들이 고화질의 TV를 시청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시급히 처리해야 할 법안이다. 현재 방송사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두 가지 방식으로 화면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전환법 제정을 미룬 채 방송사에게 희생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방송사가 기존 아날로그 방식을 중단하는 순간, 우리나라 TV 수상기 4대 중 3대인 아날로그 수상기는 ‘고물’이 된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다룰 국회 방통특위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정족수 미달로 최근 세차례나 회의가 결렬됐다. 국회의원 대부분은 법안 처리보다 다가올 총선에 마음이 쏠려 있는 듯하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국회의원에게 법안의 중요성을 아무리 설명해봐야 ‘쇠귀의 경 읽기’에 다름 아닌 것 같다.
국회 방통특위 활동 기한은 한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고, 2월 임시국회 폐회도 눈앞에 다가왔다. 국회는 국민을 위한 진정한 방송정책인지 무엇인지 이제라도 눈과 귀를 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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