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재난은 당장은 위기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한 사회가 단결하고 화합을 이루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재난을 잘못 다루면 더 큰 재앙을 불러 일으켜 사회를 파멸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졸지에 당한 숭례문 화재는 일종의 국가적 재난이다. 우리는 이 재난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차라리 전기누전이나 번개와 같은 천재에 의해 숭례문이 소실됐다면 지금쯤 우리 사회는 단합의 계기를 모색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불행하게도 숭례문은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의 못된 심사에 의해 황당하게 타버렸다. 방화범을 중죄로 다스린다고 해서 이미 타버린 숭례문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어찌됐든 우리는 마음 한 구석이 여전히 석연치 않아 당황하고 있다.
왜 석연치 않은 것일까. 방화범 말고 숭례문을 불타게 만든 진짜 범인 또는 원인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진짜 범인이 나타나기만 하면 실컷 때리고 공격해서 분을 삭일 태세다. 그래서 방화범은 잡혔지만 진짜 범인다운 범인을 찾지 못한 우리 사회는 이제 위험한 희생양 찾기에 나서고 있다.
누가 진짜 범인일까. 우선 만만한 게 물러나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국민행동본부라는 보수 시민단체는 보수 일간지에 “남대문 전소의 모든 책임은 노무현에게 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싣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주하는 데 정신이 팔린 대통령이 본업인 국가위기관리에 실패하니 ‘국보 1호’가 잿더미로 변했다”고 한다. 한나라당도 노무현 대통령 희생양 만들기에 편승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세력도 있다. 서울시장 재임시절 숭례문을 개방해서 방화를 자초했다는 논리적 비약이 횡행한다. 조금만 생각해도 문화재 개방은 바람직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 화재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세계 유수의 문화재들이 개방돼 있지만 개방이 돼서 화재가 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개방 이후 부실한 안전관리 대책이 아쉽기 하지만, 그 자체로 방화의 원인이되지는 못한다.
동아일보는 숭례문 화재 사건을 계기로 유홍준 문화재청장을 마구 때려주고 있다. 뭔가 쌓인 게 많은 모양이다. 이 신문은 2월12일자 1면 상단에 5단 크기의 “참담…후손들 볼 낮이 없다”라는 제목과 불탄 숭례문 사진 기사를 싣고, 바로 밑에 역시 5단 크기로 “숭례문 불타던 날…문화재청장 ‘외유성 출장중’이라는 기사를 배치했다. 외유성 출장이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은 사실 숭례문 화재와 거의 관계가 없다. 이 신문은 유 청장을 혼내줬을지 모르지만, 보도가 너무 비과학적이어서 황당하다. 같은 날 이 신문은 화재현장을 찾은 이명박 당선인을 꽤 부각시키는 보도를 했다.
희생양 찾기는 재앙을 맞은 한 사회가 문제의 근본 원인을 모르거나 안다고 하더라도 어쩌지 못할 때, 그 원인을 엉뚱한 희생양에 뒤집어 씌우고 때리고 죽임으로써 문제가 해결된 양 스스로 도취하는 고약한 사회심리이다. 야만적이고 전근대적이다.
희생양 찾기는 결국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 내부의 분열과 갈등, 싸움만 부추긴다.
국보 문화재의 소실에 대한 원인 분석과 향후 대책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련하면 그만이다. 지금은 서로 어루만지고 배려하고, 무엇보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숭례문 소실의 피해자는 국민 모두이고 모두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일수록 국민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사태를 서두르지 않고 해결하는 리더십이 아쉽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대신, 상처를 건드림으로써 스스로 숭례문 화재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여러모로 불탄 숭례문은 우리에게 교훈과 지혜를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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