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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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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박·단·소’ 전자제품의 경향을 나타내던 이 용어가 이 시대 우리 사회 언론이 추구하는 뉴스가치의 특징을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가볍고 표피적이고 순간적이며 사소한 것들이 뉴스라는 이름으로 미디어에 오르내린다. 아니, 이제는 그 정도를 넘어 두텁고 복잡하며 깊이있는 것들을 밀쳐내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적 흥미 혹은 신기함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뉴스의 하위 범주를 구성했던 것들이 이제는 버젓이 중심 자리를 꿰차고 있는 형편이다.
‘인포테인먼트’라는 낯설지 않은 조어가 시사하는 바처럼 정보도 재미라는 옷을 입어야만 하는 세상이 되었다. 시시콜콜, 미주알고주알, 온갖 연예인 주변사가 큰 뉴스가 되는 시절이니, 파파라치와 체크 저널리즘을 우리나라에서 목도할 때가 그리 멀지 않은 듯 하다.
아무리 재미가 가치있는 세태라 해도 이 세상에는 변치 않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일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그걸 찾아서 알려주는 임무를 담당한 것이 누구인가?
일상에 휘둘려 정신없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큰 줄기와 구석구석을 동시에 훑어주어야 하는 것이 언론이다. 제 욕심 차리느라 바쁜 소인배들이 가지지 못하는 공적 관심과 염려를 담당하는 것이 기자들이다. 기자 덕에 사회 곳곳의 문제들이 감지되고 언론 덕에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현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대부분의 경우 문제가 터져야 기자가 달려간다. 대형으로 터지고 나서야 1면 뉴스가 된다. 가까운 예로 숭례문 화재만 해도 그렇다. 국민들의 넋이 나가고 나서야 우리 언론은 문화재 관리가 어땠는지, 누구의 책임인지를 들쑤시고 파헤친다. 어쩌면 그리도 내용들이 거기서 거긴지…. 호들갑 수준에서 왁자지껄 떠들어댄다. 그리고는 잊는다. 뒷북일 뿐만 아니라 냄비다. 도대체 이런 보도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보도 수준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통’ 언론이 눈을 돌려야 할 곳은 바로 문제가 터지기 전에 우리 사회의 이슈를 발굴해서 깊이 파헤치는 탐사보도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경박단소한 뉴스, 재미있는 뉴스, 실시간 뉴스는 무료신문과 포털에 넘겨줄 때가 되었다. 그들이 가지지 못한 훌륭한 인적 자원과 시스템으로, 우리 사회의 드러나지 않은 부분, 가려진 부분을 꼼꼼히 두드리고 살펴야 한다. 그런 탐사보도를 통해서 우리 사회는 좀 덜 시끄럽고 좀 덜 위험한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
세상사가 얼마나 복잡한데 기자가 무슨 도사라도 되는 줄 아느냐고 심드렁해 하는 이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대신, 기자 입장에서는 취재 시스템을 탓할 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원하는 기사가 그런 게 아니라고, 그렇게 한가하게 놔두는 줄 아느냐고. 회사 입장에서는 돈 얘기를 꺼낼 지도 모르겠다. 이리저리 치여서 적자 규모가 나날이 커지는 마당에, 들이는 시간과 인력, 비용 대비 나오는 기사량이 적은 탐사보도는 경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돈 얘기가 나왔으니, 신문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구독료 인상 문제를 보자. 에둘러갈 것 없다. 신문이 제공하는 뉴스의 품질이 먼저인지 구독료 인상이 먼저인지는, KBS의 수신료 인상과 맞물려 생각해보면 된다. 보도가 지금 같아서야 구독료 인상에 동의할 독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구독료 더 낸다고 더 나은 신문을 보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면 독자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KBS의 ‘논리’가 먹히지 않는 이유를 신문사들은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냄비요 뒷북이라는 언론의 오명을 이제는 씻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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