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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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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가 치러지고, 인수인계를 거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요즘, 동아일보에 관한 말들이 많다. 새 정부와 코드 맞추기 보도가 너무 노골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새 정부 들어 사뭇 달라진 보도태도와 논조를 보이고 있는 이웃의 조선일보와 비교하여 “역시 동아스럽다”라고 사람들이 수군대고 있다.
자사의 정치부장 출신인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최시중 방통위원장 후보와 같은 새 정부와의 투터운 인맥, 그리고 고려대를 끈으로 하는 동아일보와 이명박 후보와의 인연 등을 고려하면 인지상정 차원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하는 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동아일보의 정치권력에 관한 보도를 보면 꼭 이렇게 드러내면서까지 편파적 두둔 보도를 해야 할 속사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다.
차라리 말 못할 속사정이라도 있으면 나을지 모른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표차이가 심하게 나서 다행히 그냥 넘어 갔지만 이 신문은 편파 보도를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 과정에서는 다른 신문들이 문제점을 지적할 때 좀 낯 뜨거운 <친절한 경숙씨> 기사를 정치면에 실었다.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동아일보 기사는 과거 5공 6공때 이른바 어용신문으로 불리던 언론의 대통령 동정 보도를 연상케 한다. 대운하, 대통령의 대외정책 발언, 방통위원장 청문회 보도 등 많은 이슈 보도에 있어서도 정부의 입장과 유사한 보도와 사설들이 많이 발견된다. 대신에 민주사회를 위한 언론의 주요 역할에 해당하는 권력감시 보도는 웬일인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동아일보는 왜 이러는 것일까. 동아일보가 이왕 정치권력과 코드를 맞춘다면 진보적인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아니고 왜 이제 와서 기다렸다는 듯이 이명박 정부와 ‘프렌들리’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것일까. 동아일보에서 일하는 적지 않은 지인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동아일보가 갈등을 빚은 것은 동아일보가 전통적으로 야당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권위주의 정부 때부터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고 비판했던 야당지 동아일보는 진보 정부에 대해서도 변함없이 비판적 언론 역할을 했고, 앞으로도 어떤 정부에서도 야당지로 남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와 프렌드가 된 동아일보는 어떤 종류의 야당지 인가. 야당지로 치면, 보수 신문 중에는 조선일보가 훨씬 시의적절하게 권력 비판을 하고 있다. 요즘 같으면 조선일보는 어느새 정파지의 오명을 벗어던지고 정론지에 가까운 모양새로 가고 있다고들 한다. 동아의 노골적인 편들기 보도에 비교하며 역시 발빠른 조선일보라는 얘기들을 한다. 조선이 역시 권력을 알고, 신문을 알고, 신문시장의 생존 전략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의 문제는 그것이 진보와 보수 이념의 문제이든, 여당과 야당 정파의 문제이든, 결국 동아일보에는 읽을거리가 많지 않다는 근본적인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이 됐든 동아일보만의 정체성의 색깔, 동아일보 기사의 냄새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상과 같은 얘기이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우리는 영혼이 없다”고 자조하기도 하고, 독자들은 소외를 넘어 체념을 하기도 한다. 그런 탓인지 요즘에는 이명박 정부의 공천을 질타하는 사설이 나오기도 했지만 지켜 볼 일이다.
사실 동아일보를 탓하고 심지어 욕을 해대는 사람도 동아일보에 대한 일말의 기대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동아일보 경영진과 고위간부들은 알아야 한다. 그 기대는 민주화 과정에서 독재의 억압을 뚫고 용기있는 옳은 보도, 험난한 저항의 몸짓을 해냈던 동아일보의 지사적 저널리즘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되고 있다. 독자들의 소중한 동아일보 기억을 상기시켜 살려나가도 부족한 판에 동아일보의 요즘 보도는 그 기억들마저 애써 지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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