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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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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연합뉴스는 “명작 동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실존 모델이었던 하이디 슈발러 할머니가 인터뷰를 통해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일생을 회고 했다”며 스위스 국제방송을 인용해 기사화했다. 그러나 이 기사가 만우절 기사임을 뒤늦게 확인하고 전문을 취소했다. 연합뉴스측은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한다.
한편 중앙일보도 프랑스대통령의 부인인 브루니에 감명받은 영국총리가 그녀를 영국패션자문으로 임명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가 만우절 기사로 판명되었다. 중앙일보는 지면에 쓰인 기자의 이름(Avril de Poisson)이 ‘만우절에 장난으로 하는 거짓말’을 뜻하는 프랑스어 ‘poisson d’ avril’의 어순을 바꾼 것이었는데 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였다. 중앙도 앞으로는 잘 하겠다고 한다.
악의 없는 거짓말, 만우절 기사는 그 내용상 심각하지 아니한 소재를 다룬다는 특징이 있고, 단순한 해프닝으로 지나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기분 좋게 웃고 넘어 갈수 있다면 나른한 봄날에 실바람과 같은 시원함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번 이야기들은 해외의 그러한 ‘뉴스 아닌 뉴스’를 최소한의 검증절차도 없이 인용하여 사실 보도로 하였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단순히 만우절 우스개에 낚였다는 식으로 보고 넘어갈 이야기가 아니다. 외신 맹신주의나 외국문화 이해부족을 이유로 이해받기에는 시대가 글로벌 시대로 접어든지도 오래이고, 해마다 인구 1천만명이 해외로 나가는 시대이다. 이는 정보를 다루는 미디어의 근본적인 문제이며 신뢰도를 지켜낼 능력의 문제로 보인다. 과연 만우절 기사처럼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는 경우를 빼고, 신문은 얼마나 많은 오보로 피해자를 양산해내고 있을까?
여러 차례 인터넷시대의 언론의 가벼움에 대해서 경고도 하고 비판도 하지만, 이에 대한 자성과 개선이 되는 것 같지 않아 유감이다. 그러면서도 독자들이 신문으로부터 멀어져 간다고 우는 소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왜 다매체시대에 기존의 엄격한 가치기준을 여전히 들이대느냐고 항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매체시대에 기존 언론이 살아남는 방법은 높은 신뢰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신문협회(NAA)가 내놓은 ‘2008 경쟁미디어’ 보고서의 내용은 많은 메시지를 준다. 신문은 여전히 다른 매체에 비해 교육수준에서도 고학력, 수입면에서도 고수입인 소비자층을 가지고 있으며 전문가들일수록 보다 더 선호하고 열독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브랜드효과에 있어서도 신문열독자들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돌이켜 보면, 신문의 소비자도달 한계란 문맹률과 관련이 되기에 문맹률의 제한을 받지 않는 라디오가 보다 보편적일 수 있지만, 오늘날 라디오보다 높은 광고가치를 신문에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보다 많은 수입 세대가 라디오보다는 신문을 많이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프라임타임대 TV시청과 신문 열독률(readership)을 비교하더라도 전체 성인이 45% 대 62%로 나타난다고 한다. 신문의 소비자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아도 여전히 신문은 가장 영향력이 높은 존재로 되어 있다. 오랜 시간을 통해 형성된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기대하는 신뢰수준은 높다. 언제까지 총성도 높은 고객들의 이해만을 기댈 것인가? 정보 아닌 정보의 홍수시대, ‘아차 실수’를 애교로 보기에는 상당히 많은 고객들이 지쳐있고, 미디어로서 내일을 가능하게 해줄 고객들이 바로 피해자가 되는 위험은 상존한다. 다매체상황에서도 상당수의 매체는 단순히 노출하거나 전송하는 존재로 남기 때문에 직접적인 정보 생산에 참여하는 신문의 신중한 접근과 높은 직업의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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