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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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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를 지향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비전은 시의적절하고 현실 적합적이기까지 하다. 이참에 대한민국도 제대로 된 선진국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진정한 선진국을 향하여 발을 내딛고 있는 이명박정부의 발목을 잡는 매우 후진적인 언론계 문제 하나가 있다. 너무나 후지고 볼썽사납건만 이제 인습이 되고 고질병이 돼서 문제의 근원을 따지려는 사람도 많지 않아 더욱 문제다.
바로 공적 소유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일부 언론사에 대한 청와대의 부당한 인사권 행사 관행이다. 작금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KBS 정연주 사장의 진퇴 문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신문 사장 신임문제, 그리고 미구에 닥쳐올 YTN과 연합뉴스의 사장 선임문제 등이 그것이다.
18대 총선 결과 정치권력이 청와대와 여당인 한나라당으로 크게 이동한 요즘, 부쩍 이들 언론사의 사장이 되기 위해 누구 누구가 뛰고 있다는 소문들이 언론계와 정계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선진국 사람들이 보면 정말이지 부끄럽고 한심한 얘기가 선진국을 지향한다는 대한민국에서 2008년 오늘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공개된 비밀이 됐지만, 공영 또는 공적 소유 구조의 언론사의 사장 임명은 사장 후보들의 공정한 언론관이나 경영능력 보다는 유력한 정치권력, 구체적으로는 청와대 권력의 끈을 누가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정치적 독립성은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로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이들 언론사들은 사장을 임명한 청와대 권력에 편향된 보도를 한다는 비난과 시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청와대의 낙점을 받은 사장은 언론사 대표로서 품격과 경영능력을 끊임없이 의심받아 왔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권력자의 끈을 찾아 나서는, 정치꾼이 된 일부 언론인들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저널리즘을 참담하게 한다.
이런 잘못되고 음습한 관행들은 대체로 권위주의 정부, 특히 80년 이후 신군부 세력이 언론을 정치권력 아래 통제할 목적으로 만든 것들이다. 기본 구조는 이사회든 진흥회든, 정부산하기관으로 구성된 대주주든 언론사의 경영구조를 형식상으로 지배하는 허수아비 조직을 만들고, 청와대가 사실상 인사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언론 통제 방식은 민주화 이후 보수적인 김영삼 정부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정치적 정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정치권력을 위해 언론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데는 보수도 진보도 없었다. 가령, 현재의 KBS 정연주 사장도 김대중 정부가 임명한 전임 박권상 사장의 임기를 자르고 노무현 정부가 임명했고, 그 이전 사장 임명 때도 그런 식이었다.
이제 10년만에 보수정권으로 바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KBS 사장 문제를 가지고 고심하고 있다. 지금까지 상황은 청와대가 이전의 진보 정권이 낙하산 인사한 정 사장의 임기를 중단시키고 새로운 사장을 임명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보수 정부 아래서 진보의 코드를 대변하는 정 사장, 그것도 임기가 내년 11월까지나 남은 인사를 그대로 인내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공헌한 챙겨줄 언론계 인사도 많다고 한다.
물론 청와대는 정연주 사장을 밀어낼 힘이 있다. 다소 잡음이 나겠지만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대통령 임기내에 시행될 YTN, 연합뉴스, MBC, 서울신문 사장 인선도 그전의 진보 정부가 하던대로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를 할 수 있다. 지켜볼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는 지금 대한민국 정치와 언론이 선진 민주주의 수준으로 넘어서는 바로 그 문턱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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