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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재일 세명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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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났다.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최민호의 시원한 한판으로 시작된 금메달 행진이 야구 우승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온 국민이 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 사이 KBS 정연주 사장 퇴출 작전도 동시에 진행됐다. 올림픽 개막과 더불어 시작된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시나리오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정연주 사장 해임 절차는 사실상 완료됐고, 이제 후임 사장 임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시민들의 시선이 다만 올림픽에 홀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랜 촛불집회의 끝자락에 열린 올림픽은 분열에 지친 시민들이 이의 없이 ‘국민’으로 통폐합되는 계기였다. 이 시점에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시나리오가 연출됐다. 청와대와 검찰과 감사원과 KBS 이사회와 법원의 손발이 싱크로나이즈스위밍 선수처럼 척척 맞았다. 1백만개의 뜨내기 촛불보다 튼튼한 밥줄로 엮어 놓은 몇 개의 조직이 더 위력적이다. 역시 조직력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정치권력의 공영방송 장악의도가 명백한 이 사태에 대해 언론 내부의 대응은 어떠한가? 경향과 한겨레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신문이 정연주 사장의 사퇴를 종용하는 사설을 연일 써 댔다. 언론이 공식적으로 정 사장 사퇴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 사장으로서의 명백한 잘못이 있어야 한다. 정 사장 사퇴 주장의 논거는 대략 ‘전 정권의 코드인사’, ‘좌파 편향방송’, ‘방만한 경영’ 등이다. 개인적인 비리는 검찰이 뒤집고 감사원이 털어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논거만 보고 나보고 인물평을 하라면 “청렴한 인물로 기자시절 정권에 줄서기보다는 주로 저항하는 편에 선 까닭에 참여정부 때 발탁됐고, 사장이 된 이후도 일관되게 시청률보다 그가 생각하는 공공성에 주력한 사장”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그는 ‘전 정권의 코드 인사’가 맞다. 정치권력의 남용이 가장 덜 했던, 권위주의 하나만은 척결했다는 평을 받는 전 정권의 코드인사다. 어차피 KBS 사장이 개국 이래 정권의 코드인사였음을 인정하면 후임 사장 인선을 위해 비서실장, 대변인, 방통위원장, KBS 이사장 등이 모여 반상회를 하고 있는 이 권위적인 정권의 코드 인사보다 백배 낫다. ‘공영’을 ‘국영’으로 오인하고 ‘정권’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이 정권의 눈에 ‘좌파 편향방송’이란 ‘정권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방송’에 다름 아닐 터이다. 정권이 공영방송을 대하는 태도는 명백한 하자가 있다. 그럼에도 보수매체는 이 문제를 묻어버리고 ‘낫(not) 정연주’의 정파적 코드로만 대응하고 있다.
기자실 철폐에 대해 언론은 만장일치로 반대했다. 반대 논리의 핵심 근거는 ‘시민의 알권리’였다. ‘알권리’는 멀리 있는 추상적인 얘기이다. 당장 취재가 불편하고 취재원과의 관계 속에서 직업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기자들에게 기자실 폐쇄는 중대한 직업적 이익의 침해를 의미한다. 아마 ‘시민의 알권리’보다 ‘기자들의 누릴 권리’ 침해에 분개한 기자들이 더 많았으리라. 그러니 멀리 있는 공영방송의 언론자유보다 정권의 그늘에서, 혹은 사주의 그늘에서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직업적 이익에 따르는 기자들이 더 많은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다.
기자협회에서 조사한 기자들의 설문 결과를 보면 정연주 사장 해임에 대해 65.7%가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 모양인가? 사적으로 알고 지내는 KBS의 한 젊은 기자는 “기본도 하려고 하지 않는 사내의 보신주의에 정말 화가 난다”고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65.7%의 다수 의견은 표명될 길이 설문조사밖에 없단 말인가. 기자들은 왜 ‘언론자유’의 기치 아래서는 이제 더 이상 조직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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