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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인 김미화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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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베이징으로부터 속속 날아든 우리 선수들의 승전보는 무더위에 지친 우리 국민들에게 ‘얼음수박’같은 청량감을 전달해 주었다.
성적은 대한민국이 세계 7위. 스포츠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 누구, 그 무엇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에 이렇게 큰 불을 지를 수 있었을까.
선수들의 각고 끝에 이루어 낸 값진 메달 못지않게 자랑스러웠던 것이 있다. 분패의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을 화면으로 지켜보며 ‘값진 패배의 감동’을 우리는 공감했었다. 같이 눈시울을 붉히며 그들을 격려하고 박수를 보내는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응원문화. 올림픽, 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대회를 이미 20여 년 전부터 성공적으로 치러 온 대 선배 국가답게 중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현상이었다.
올림픽이 끝난 뒤 우리 선수들의 입국 환영식이 열렸다. 그런데 나의 시선을 잡은 글귀. TV화면 아랫자막으로 쪼르르 지나가는 ‘베이징올림픽 선수 병역면제 혜택 24명 확정’
그 순간 엉뚱하게도 나의 스물 세 살 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너무나 늠름하고 잘생긴 내 아들. 그러나 그는 열 살 나이에서 지능이 멈춰 있다. 그래서 그는 뭐든 순수하다. 나는 나의 아들을 보면서 영화에 나오는 포레스트검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빠를 닮아 음악에 뛰어난 소질로 국립대학에 입학했고, 지금 대학 2학년생이다.
세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희야가 그 학교를 졸업했는데, 비장애인이 90%이다.
그도 건장한 또래 친구들과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함께 수업을 듣고, 함께 음악적 고민을 하고, 술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도 한다.
예쁜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어 하고, 여자친구와 한쪽씩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젊은이다.
친구가 슬픈 일을 당하면 진심으로 슬퍼하고, 기쁜 일이 있을 땐 누구보다 기뻐하고 축하해준다.
그러나 우리 아들은 군대를 못 간다.
“저도 이제 군대 가겠네요!” 그는 나이가 차서 하나둘씩 군에 입대하는 학교친구들과 후배들을 보면서 해맑게 웃으며 얘기했다. 우리 남편은 슬쩍 자리를 피한다.
이 땅에 때어난 사지 멀쩡한 피가 끓는 23세 내아들! 뭐가 문제인가? 지능이 어리다고 해서 군대에 못갈 것도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군대에 가고 싶어한다. 군에 입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이고, 감사할 일이고, 또한 선택받은 젊은이들인가!
우리 사회에는 거꾸로 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소수’도 있다.
나는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누구보다 그들을 마음속으로 축하하고 있다. 국위선양의 대가로 우리 선수들에게 부여되는 ‘병역면제 혜택’
우리 국민이라면 그 누군들 ‘병역법 시행령 제49조’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부정하랴. 군 입대의 병역의무 대신 선수 또는 코치로 스포츠 발전에 기여해 달라는 국가의 명령인 것이다.
문제는 용어의 선택이라고 본다. 우리는 그동안 ‘혜택(惠澤)’이라는 단어를 애먼 곳에 남용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대신 사용될 수 있는 단어는?
살펴보니 이번 군 면제 ‘수혜자’들은 병무청에 ‘체육분야 공익요원 편입원’을 제출하고 3년간 해당 종목에 선수, 코치로 활동을 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단다.
이런 자막은 어떨까.
‘올림픽 선수 체육공익요원 편입대상자 24명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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