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생성되는 곳에 언론이나 세상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서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기사가 AP와 로이터 등 국제적 통신망을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된 뉴스의 중심적 생산지였다. 세계는 서울에서 주로 생산된 뉴스를 통해 김 위원장의 ‘병세’나 북한내 후계 구도 등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
AP와 로이터 통신이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보도한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설 등 북한 관련기사를 분석한 결과 AP 통신이 6건, 로이터 통신이 7건이었다. 그 가운데 서울발은 AP 통신이 5건, 로이터 통신이 6건으로 각각 83%, 86%였다. 두 통신을 통해 서울은 전 세계가 주목한 북한 관련 보도의 주요 생산지가 된 것이다. 이들 국제 통신사들은 서울발로 김 위원장의 와병설, 후계문제, 북한의 새 미사일 기지 건설 등에 대해 보도했다. 이 기간 동안 이들 통신의 북한 관련 보도에서 발신지가 서울이 아닌 곳은 워싱턴(AP통신), 도쿄(로이터 통신) 등으로 각각 1건 씩에 불과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9일 북한 건국 60주년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이후 15일까지 세계는 서울을 주시했다. 국내 언론은 김 위원장과 관련한 기사를 연일 무더기로 보도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AP, 로이터 등 국제통신사에 의해 서울발로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김 위원장에 대해 한국 국가정보원 또는 신원을 밝히지 않은 정부 관리들의 입을 빌어 각종 정보가 국내 언론에 전달되어 보도되었다. 익명의 정보부처 등에서 매일 흘리거나 공개한 정보는 너무도 현장감이 넘쳐 일부 언론은 김 위원장의 병상일지라도 보는 듯하다고 꼬집을 정도였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이 침묵을 지키거나 말을 아끼는 상황에서 서울에서는 김 위원장에 대한 생생한 정보가 기사화되었다. 이러니 AP, 로이터와 같은 국제통신사가 서울을 주목하고 서울을 김 위원장 관련 기사의 주요 생산지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국제통신사는 뉴스의 도매상 역할을 하기 때문에 뉴스 고객들에게 신뢰감과 현장감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과 관련해 지난 일주일 동안 국내외 언론에 보도된 기사롤 모아보면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커버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출처 불명의 정보라 해도 그것이 기사화되고, 기사화된 것을 다른 언론이 재인용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신뢰할만한 기사로 변신하는 일이 적지 않다. 유언비어가 기사로 둔갑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6자회담 등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던 김 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추정이 거듭되는 관련보도 속에서 김 위원장의 와병설은 기정사실화되는 듯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 결과 후계구도, 북한 비상사태 발생시 한국, 미국, 중국의 대응에 대한 기사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통일부는 김 위원장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 ‘확인된 것은 아니다’라고 뒤늦게 밝히고 있지만 언론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통일부는 16일 정부 고위 당국자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상태가 '직접 양치질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이같은 첩보를 입수한 바는 있지만 확인된 정보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런 해명은 정부 고위 관리가 ‘첩보 수준의 정보’를 이미 유출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언론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북한의 9.9절이 지난 뒤 지금까지 북측에서 책임있는 당국자가 명확히 밝힌 것은 ‘김 위원장에 대한 와병설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언론은 사실관계에 입각해 보도해야 하는데 국내외 언론은 이를 외면 또는 경시했고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한국 정보기관과 정부관리,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일부 국내 언론이 물불 안가리는 듯한 보도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인지 모른다. 어쨌든 오늘날 외국 통신사들은 서울을 주목하게 되었고 전 세계가 서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 위원장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진상이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처럼 온갖 상상력이 다 동원되는 식으로 상반되는 내용들까지 버젓이 기사화되고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 머잖아 그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서울을 중심으로 벌어진 소동은 정상이 아니다. 특히 국내외 언론이 그렇다. 언론은 정보기관이나 익명의 정부 관리를 취재원으로 삼아 보도를 할 경우에도 그 최종 책임은 언론 자신이 지게 되어 있다. 이 점에서 지난 일주일 동안 쏟아진 서울 발 북한 기사 대부분은 언론의 정상적인 보도 준칙과 윤리에서 크게 벗어나는 내용이다.
참고로,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AP와 로이터 통신에 보도된 김 위원장과 관련된 북한 기사는 아래와 같다.
2008년 9월 16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 AP 통신 보도 기사
◆ 로이터 통신 보도 기사 14일 도쿄발- 김 위원장은 지난 4월부터 심각한 병에 걸렸으며 근무 중에 때때로 의식을 잃기도 했다. 11일 서울 발 - 국정원장이 “김 위원장은 뇌졸중에서 회복되고 있는 과정으로 국정을 장악하고 있고 부축을 받으면 일어설 수 있으며 말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고 한 국회의원이 전달했다. 11일 서울 발 - 김 위원장의 후계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아 북한은 후계문제로 심각한 갈등 발생 가능성에 직면했다. 11일 서울 발 - 한국관리들은 북한이 새로운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는 보도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11일 서울 발 - 이명박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뇌졸중을 앓고 있다는 추정보도 이후 북한에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 각료회의를 소집했다. 10일 서울 발 - 북한은 김 위원장이 와병 중이라는 보도를 부인했다. 9일 서울 발 - 김 위원장이 건국 60주년 군사 퍼레이드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한 미국 정보요원은 그가 뇌졸중을 앓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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