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조승호 기자, 자랑스럽다!


   
 
  ▲ 연합뉴스 옥철 기자  
 
13년 전 늦여름 어느 날이었다. 1995년 8월25일.
전국에 물난리가 났던 때다. 태풍 제니스가 북상하고 집중호우가 겹쳐 전국 철도망 26개 구간이 침수됐다.
광복 이후 처음 경부선 상·하행선이 한나절 넘게 불통됐던 날이다. 물론 KTX도 개통되기 전이다.

당시 필자는 서울역 뒤편에 있던 옛 철도청 상황실에 있었다.
연합통신(연합뉴스 전신) 철도청 출입기자였고, 곁엔 함께 출입하던 YTN 조승호 기자가 있었다.
전국 철도망이 마비됐다니 주무 기자에겐 엄청난 사건이었던 셈이다.
그날을 전후해 사나흘쯤 집에 가지 못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조 기자에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YTN은 워낙 초창기라 변변한 중계차도 몇 대 없던 시절이다.
하지만 24시간 뉴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매 정시 뉴스가 시작되면 YTN 앵커는 무작정 현장기자만 찾는다. 이른바 현장 전화 연결이다.
‘현장에 조승호 기자 불러봅니다. 조승호 기자!’

이렇다 할 기획물도 없이 생(生) 뉴스만이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던 YTN 기자들에겐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루가 24시간이고 나흘 꼬박 매시 전화 연결을 해댔으니 족히 80번쯤 한 것 같다.
조 기자는 매시 55분쯤 되면 송화기를 바짝 들이댄 입술에 침이 바싹 말라붙었던 것 같다. 자정에도, 새벽 2시에도 예외는 없었다.

어디에는 겨우 개통됐고, 어느 구간은 아직 불통이고, 어디선 철로변 나무가 쓰러져 복구 작업하던 보선원이 다쳤고….
이런 식으로 매 시간 상황을 바꿔가며 전화통에다 메아리를 울려야 했다.

마지막엔 파김치가 된 건지 기자실 소파에서 칼잠을 자다 잠꼬대로도 방송 코멘트 비슷한 소리를 해댔던 것 같기도 하다.
10여 년이 흘러 이제 조 차장, 조 반장이 됐지만 그때 한창 초년병이던 조 기자의 목소리는 그런 식으로 거칠지만 치열하게 방송을 탔다.

그랬던 조승호 기자가 지난 주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1980년 이후 28년 만에 자행된 언론 학살 희생자 명단에 들었던 것이다.
그는 연합뉴스 출신이다. 조 기자의 해고 소식을 접한 연합뉴스의 옛 사우들도 할 말을 잃었다.
“답답하리만치 우직하게 일만 하던 친구인데…”

그는 YTN이 창사되자 옮겨갔다. 우리도 CNN 같은 뉴스 전문 채널이 탄생했다며 꿈에 부풀었던 그다.
물론 YTN엔 조 기자만 있었던 게 아니다.
누구든 빠짐없이 매 시간 리포트를 하고, 전화 연결을 하고, 기획물을 만들면서 하나둘 발전해갔다.

혹독한 IMF 한파가 몰아닥쳤을 때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손에 움켜쥔 마이크를, 전화기를 결코 놓지 않았다. YTN 구성원들에겐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집기를 날라가며 남대문 새 사옥으로 이사를 갔고 도심 야경에 빛나는 YTN 타워를 갖게 됐다.

구성원 하나하나의 쉬고 갈라진 목청을 자양분 삼아 YTN은 국내 유일의 보도 전문 채널로 위상을 세웠다.
히트작 ‘돌발영상’을 만들어 국정감사 때 비싼 밥 드시고 꾸벅꾸벅 졸던 ‘금배지’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기도 했다.
힘겹게 궤도에 올라선 YTN 구성원들은 고난의 시기를 밑돌에 괴고 다시 윗돌을 쌓아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동고동락하던 사우들이 청천벽력 같은 해고를 당했다.
도대체 어디서 뭘 타고 떨어졌기에! 무슨 대선 캠프 홍보맨이란 사람이 얼토당토않게 용역업체 직원들로 가득 메운 상암동 회의장에서 불과 30초 만에 나무망치 세 번 두드리게 하고 사장 자리에 앉더니 10년 넘게 피땀 흘려온 집 주인들의 목을 쳤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최소한 상도의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YTN 뉴스를 만들기 위해 기사 한 줄 쓴 적 있는가. YTN 타워에 벽돌 한 장이라도 얹어본 적 있는가.
80일 넘도록 YTN 사장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구본홍씨도 30년 방송 일을 해온 프로임을 자청한단다.

방통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단다.
정녕 안타깝다면 오늘날 YTN을 만들기 위해 뛰어온 구성원들의 피땀을 한 번이라도 떠올려보라.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YTN 기자들에게서 앗아간 마이크를 제 자리에 갖다놓길 기대한다. 옥철 연합뉴스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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