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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열 시사IN기획특집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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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일원으로 10월18일부터 22일까지 평양에 다녀왔다. 17명의 방북단 멤버 중에 MBC 노경진 기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언론계 선배들이었다. 선배들이 물꼬를 터놓은 남북 언론인 교류의 끈을 이어가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방북단에 동참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변에 대한 뉴스가 ‘중병설’을 넘어 ‘사망설’까지 제기되는 국면이어서 더욱 긴장되었다. 북측에 ‘중대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경우 역사의 현장에 설 수도 있지만 자칫 그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공식 일정을 제외하고는 호텔에 고립되어 있어야 했고 신문과 방송, 인터넷도 볼 수 없었다.
그때 남측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언론분과위원회(이하 북측언론분과) 조충한 부위원장의 입이었다. 그는 우리를 만날 때마다 남측 언론 보도에 대한 코멘트를 던졌다. 그의 말을 듣고 ‘아 그런 보도가 있구나’하고 유추할 수 있었다.
하나하나 코멘트를 구체적으로 던지는 것이, 자신의 말이 남측에 전달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남측 보도에 대한 일종의 반론권을 행사한 셈이다. 조 부위원장은 이번 제4차 남북언론인대표자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도 남측 언론인들에게 ‘김정일 위원장 중병설’ ‘원정화 간첩사건’ 등 주요 사안에 대해 북측 입장을 전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남측의 ‘삐라 살포’ 등에 대해서 북측 입장을 밝혔다.
반론권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이뤄졌다. 묘향산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북측 안내원은 생뚱맞게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물론 북측에서는 이렇게 부르지 않는다)’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주장은 ‘습격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대결이었다’ ‘조선사람은 뒤로 물러나 있으라고 말하고 미제하고만 겨뤘다’는 것이었다.
‘푸에블로호 피랍사건’에 대해서도 ‘크로스체크’를 할 수 있었다. 북측은 나포한 푸에블로호를 구한말 셔먼호를 격침시켰던 대동강변에 전시하고 있었다. 북측의 주장은 푸에블로호가 간첩선이라는 것이었다. 나포 당시 침투조를 이끌었던 박인호 대좌(아직 은퇴하지 않고 현역 복무 중이었다)는 선박 내부의 첩보 송수신 시설을 보여주며 이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 관련 보도에서 북측의 반론권은 당연한 듯 간과되었다. 이 무책임하고 일방적인 보도는 종종 남북관계를 교착상태에 빠뜨리곤 했다. 이번 남북언론인대표자회의를 통해서 어렵게 남북 기사교류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상호 반론권 행사를 위한 최소한의 틀이 형성된 것이다.
북측의 반론은 적극적으로 전달하기로 하는 대신 남측 언론인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북측이 멍석만 깔아주면 취재 개방을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의 까다로운 간섭을 극복하고 어렵게 평양에 온 것이 관광을 위해서가 아니다. 취재를 하게 해달라. 일단 북측이 자신있는 것부터라도 취재하게 해달라”며 끊임없이 요구했다.
송별 만찬장에서 ‘애인론’을 내세우며 취재요구 행렬에 동참했다. 통일이라는 결혼을 하기 위해서 연애를 하고 있는 남과 북이 서로 치부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인 사이에 숨기면 오해가 쌓이지만 드러내면 이해가 싹튼다’고 설득했다. 이 주장에 북측 정명순(조선중앙방송위원회 국장) 위원이 ‘남과 북은 이미 부부인데 외세에 의해 헤어지게 된 것이다’라며 ‘별거론’을 내세우며 반박했지만 취재요구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상대방의 입장을 들어주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 그것은 좋은 언론과 좋은 취재원이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남과 북이 이 소중한 원칙을 지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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