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씨의 만화 ‘식객(食客)’의 마지막권 ‘팔도 냉면 여행기’ 중에서도 최종회에는 부산밀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부산밀면 편에 등장하는 ‘밀면광(狂)’이 바로 부산일보 박종호 맛집 전문기자다.
허씨가 2010년 부산에 밀면을 취재하려 왔을 때 밀면에 관한 각종 자료를 제공하고 밀면집 취재 섭외 및 운전기사 노릇을 한 게 박 기자였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인기 만화에까지 나오는 영광을 누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부산이 인정하는 맛 전문가다.
박 기자의 식도락이 시작된 건 2008년 라이프레저부로 발령나면서부터. 맛집 담당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4년째 부산과 경남 지역 맛집을 찾아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고 있다.
“올해 들어 ‘여행 기사’도 쓰게 돼 맛집 탐방이 일주일에 2곳 정도로 줄었지만 지난 3년간은 일주일에 최소 3~4곳을 다녔어요. 그렇게 다녀본 곳이 5백~6백여 곳입니다.”
그 덕에 부산·경남 지역의 맛집이란 맛집은 훤히 꽤 뚫고 있다. 그가 최근 쓴 책 ‘부산을 맛보다’에는 그 중에서도 빼어난 맛집 중의 맛집 1백여 곳의 맛과 정보가 담겨 있다.
혹시 휴가철, 부산 해운대 등으로 휴가를 떠날 기자들이 있을지 몰라 그에게 “부산에 가서 꼭 먹어야할 음식 5가지”를 골라 달라고 부탁했다.
“다섯 가지요?(웃음) 돼지국밥, 밀면, 구포국수, 완당, 곰장어를 꼽겠습니다. 이 음식은 부산에 와야만 제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 여름 부산에 와서 회를 드시겠다면 활어회 말고 선어회(숙성회) 맛도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박 기자에 따르면 부산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대표 음식인 돼지국밥과 밀면은 6·25 전쟁 당시 먹을거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나온 음식. 여럿이 배를 불리기 위해 돼지고기와 뼈다귀를 넣고 펄펄 끓여 돼지국밥을 내어 먹었고, 메밀이 없어 밀가루로 면을 내어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함께 음식을 맛본다면 더 새로운 체험이 될 것이라고 박 기자는 권했다.
그런 그가 4년간 장수 코너를 연재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맛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신문을 통해 ‘맛집’이라고 소개하려면 10명 중 8명은 맛이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 집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검증에 검증을 거친다. ‘트루맛쇼’와는 다르다.
“주위에서 청탁이 많이 들어옵니다. 아버지도 저한테 주위 사람이 낸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두어 번 부탁을 하시더군요. 지금까지 들어드리질 못했어요. 또 앞으로도 부탁을 들어드릴 가능성이 없습니다. 냉정하고 객관적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장수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박 기자는 자격이 없는 집이 언론을 타면 일시적으로 장사가 잘될지 몰라도 결국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한번은 횟집을 소개했는데 독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사에 소개된 맛집이 “회를 올려놓았던 얼음을 재활용한다”는 제보였다.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충고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결국 ‘사장님 그러시면 안됩니다’라고 칼럼을 썼다. 가게 이름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결국 그 집은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문을 닫았다.
반면 ‘맛의 장인’들에게는 그의 기사가 보약이 되기도 한다. 한번은 60대 노부부가 30년 넘게 정성껏 운영하는 집을 소개하는 기사를 썼더니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더구나 발길이 뜸하던 아들, 딸, 며느리까지 나와 식당을 돕고 있었다고 한다.
“노부부의 얼굴빛이 환하게 달라졌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가족 간의 화합만큼 더 좋은 게 있을까요.”
박 기자는 ‘루왁’같은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루왁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맛있는 커피다. 루왁이라는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으면 겉껍질은 소화되고 씨는 배설물과 함께 나오는 데 이게 커피 루왁의 원료가 된다.
“루왁처럼 몸 안에서 기사를 잘 소화시켜서 최고의 향이 나는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죠.”
민왕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