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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 CBS 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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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총선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언론의 선거 보도는 여전히 경마중계식 보도에 치우쳐 있다. 누가 경선에서 후보가 되느냐로 시작해서 어느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가, 어느 지역구에서 누가 이기느냐, 어느 당이 제1당이 되느냐에 매달렸다.
투표가 끝나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누가 1등으로 조사됐는가를 따져 판세 분석을 내놓았다가 뒤집혀 망신을 당했다. 그리고 이튿날 총선 결과가 드러나자 이번에는 총선이 대선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와 다음 대통령 유력자에만 집중한다.
선거는 정치 현실과 정치 변동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다. 흔히 선거를 통해 대표자가 뽑히고 여당 야당이 결정되며 제1당과 2당, 군소정당이 생겨나는 것까지 생각하지만 선거의 의미는 그 이상으로 자못 심각하다.
우선은 유권자인 국민 대중과 정치 엘리트를 잇는 연결고리가 선거이다. 선거를 통해 국민은 자신들을 대표할 정치인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치를 선거는 이 선택된 정치 엘리트를 유권자의 통제 아래에 두는 수단이 된다. 다음 선거에서 버림받지 않도록 정치 엘리트는 유권자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 정책을 마련하고 법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선거는 정치 엘리트의 임기 동안의 처신과 활동에 대해 선거를 통해 평가하고 책임을 묻는다.
다음으로 제도로서의 선거 방식은 정치의 틀을 짠다. 선거에서 투표연령과 선거구가 정해지면 유권자가 될 수 있고 없고가 결정된다. 선거자금을 모으는 방법에 따라 돈과 권력의 유착, 유권자의 지지 후보에 대한 지원 방법도 달라진다. 당선자 결정 방법에 따라 정권의 향방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광복 후 미군정 하에서 치러진 의회선거는 4단계 간접선거였다. 리와 동별로 주민들이 마을 대표를 뽑고 마을 대표들이 면 대표를, 면 대표들이 군 대표를, 군 대표들이 도 대표들을 뽑았다. 이렇게 4단계를 거치면 주류 세력에 반기를 들거나 반감을 가진 후보들이 걸러지고 우익과 관변 후보들이 살아남는 효과를 거둔다.
더 극단적인 예로는 국민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뽑고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체육관에 모여 뽑는 방식도 있었다. 결국 유권자를 체육관에 모두 가둬놓고 감시 하에 치르는 공개투표나 마찬가지 형식이었다. 이러한 유신체제, 5공체제 선거방식은 영구집권을 가능케 하는 대통령 선출 방식이다. 이렇게 선거에 의해 정당의 수와 성격, 정당의 독립성과 안정성, 정치권력의 통치방식까지 결정되는 것이다.
선거는 정당 정치의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고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치적 변화에 있어서 연결고리의 역할을 선거가 맡는다. 마치 자동차 운전에서 기어 변속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커브를 틀거나 오르막 내리막으로 바뀔 때, 속도를 내야 할 때 기어를 변속하듯이 선거가 앞과 뒤를 연결해 주어야 다음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방향을 확실히 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야 의석 변화와 18대 의원의 교체율, 진보정당의 원내진출, 동서진영에서 여야의 득표율을 따져 볼 때 결코 직진이 아니다. 방향 속도 모두 바뀌었다.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의 공약도 질적으로 확실히 달라졌다. 이렇게 선거를 통해 한 나라의 정당 정치의 내용과 수준이 결정된다. 그렇게 국민은 민주주의의 운전자가 되고, 민주주의는 국민의 선거에서 발휘한 집중력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토록 중요한 선거를 유권자와 연결시키는 고리는 바로 언론이다. 이번 총선거는 방향전환과 속도조절에서 변속기로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언론은 그저 의석수만 따져 보지 말고 득표율과 득표율의 변화추이를 살펴 우리 정치의 방향과 속도가 어떤 변화를 보이고 있는지를 분석해 제시해야 한다. 그 내용을 유권자 국민에게 전달해 유권자가 공유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돌이켜 보도록 해야 한다. 또 당선자와 낙선자, 정당들에 보여주며 자신들을 성찰하도록 일깨워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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