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방송장악으로 언론자유 훼손…낙하산 사장 방지 제도 필요
122주년 세계 노동절인 1일, 우리나라 전 산업을 통틀어 노동자들이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곳은 금속도, 자동차도, 조선도 아닌 바로 언론이다. MBC와 KBS, YTN, 국민일보, 연합뉴스 노조가 파업을 벌이고 있고 부산일보 노조의 정수장학회 독립투쟁도 5개월을 넘고 있다. 파업에 참가한 기자들은 해고와 징계에 생활고까지 비싼 대가를 감수하고 있다. 이런 필사적인 동시다발·집단·장기투쟁의 예는 언론에 일찍이 없었다. 이명박 정권에 장악되고 사주에 유린당하는 언론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났고, 여기에 맞선 저항의 몸부림이 오늘의 파업이란 평가다.
서울신문 기자로 1988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을 결성해 초대, 2대, 3대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 통합진보당 의원을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만났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에 맞선 이번 싸움이 한국 언론의 사활이 걸린 승부처”라며 “어렵고 힘들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고 후배들을 격려했다.-노동절이다. 언론계 후배들의 파업을 어떻게 보고 있나.“지금 MBC, KBS, YTN 등 방송사들을 비롯해 국민일보, 연합뉴스 노조가 파업을 하고 있는데 참으로 잘 싸우는 것 같다. 언론환경이 과거에도 좋았던 건 아니지만 현 시점이 가장 어렵다. 후배들에게 속 시원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해 안타깝다. 모든 것을 던져서 싸워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구호를 곱씹어 봄직한 상황이다.”
-현 언론환경이 과거보다 어렵다고 했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가. “1988년 언론노련을 결성했을 때 권력으로부터 해방, 자본으로부터 해방, 비리로부터 해방 세 가지를 내세웠다. 권력의 언론탄압은 87년 투쟁 이후 민주화를 겪으면서 어느 정도 완화된 것이 사실이다. 반면 자본의 압력은 더 심해져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지금 자본으로부터 독립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여겨졌던 권력과의 싸움이 이명박 정권에서 다시 되돌아왔다. 이 조건에서 후배 언론인들이 싸우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싸움이다.”
-이번 투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나.“1960년대 언론윤리위원회법 투쟁, 1970년대 동아투위와 조선투위, 1990년 KBS 파업 등 고비마다 언론노동자의 투쟁이 있었지만 지금이 그때보다 더 중요하다. 이번 싸움은 한국 언론의 사활이 걸린 분수령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 언론이 탄압받고 예속되고 있다. 언론자유가 훼손되고 있다. 이것들이 낙하산 사장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낙하산을 청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승부처에서는 밀리면 끝장이다. 승리의 발판을 마련해야 언론의 미래가 있다.”
-1990년 KBS 파업 등 선배들의 파업에서 후배들이 얻어야 할 교훈은.“1990년 KBS 파업은 관제사장 거부였다. 파업이 끝나는 시점에서 목표를 이루지 못해 외형적으로는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내용에서는 KBS를 살린 투쟁이었고 국민의 방송으로 만들어가는 시발점이었다. 그럼에도 사장 선임제도를 독립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방송사의 파업은 대 정권 투쟁이다. 투쟁의 전략과 각오, 결의가 달라야 한다는 의미다. 1990년 투쟁이 끝나고 세월이 지난 후 당시 주무장관이던 최병렬 공보처장관이 내게 한 얘기가 있다. 정권의 입장에서는 KBS 파업은 정권의 존립에 관한 문제였고 모든 국가의 자원을 총동원해서 맞섰는데 막상 KBS노조는 사내투쟁으로 국한하더라는 것이다. 승부는 거기에서 결정됐고 시간만 지나면 와해될 것이란 생각을 가졌다고 했다. 지금도 그때와 같다. 방송사 파업은 이명박 정권과의 싸움이다. 어떤 자세와 각오로 싸울 것인지 후배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파업 끝나면 투쟁 과정의 반성과 성과, 화면과 지면에 나타나야그는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짚었다. 과거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이를 바탕으로 파업 후 공정방송의 상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방송, 언론민주화를 위한 파업이 끝나고 나면 투쟁과정의 요구와 반성, 성과가 화면과 지면에 그대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구현됐나. 여기에 자신 있게 답할 노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의 싸움도 낙하산 사장이 퇴진하고 해고자가 복직하면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정리될 것이다. 그 이후에 공정방송은 이뤄질 수 있을까. 후배들에게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그렇다고 자신할 수 없다. 권력과 투쟁하면서 자기반성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왜 우리가 파업을 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는가. 파업 후 화면과 지면에 어떻게 반영시킬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파업이 끝나고 국민들로부터 규탄 받는다. ‘너희들 왜 파업했어’라는 질책을 받는다. 싸우는 과정에서 과거를 보고 미래를 그려야 한다.”
-정권의 방송장악 도구가 된 방송문회진흥회와 KBS이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높은데.“낙하산 사장이 퇴진한다고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는 낙하산 사장이 없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KBS이사회와 방문진을 재구성하도록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다. 민주통합당이 들으면 섭섭하다고 하겠지만 민주통합당이 제1당이 되었다고 해도 독립적인 사장을 보장하는 법을 쉽게 만들어줬을까 싶다. 더구나 새누리당이 제1당이니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정치협상을 하고 국민의 압력을 높이고 언론사의 요구를 하나로 집결시키면 가능하다고 본다. 19대 국회에서 꼭 독립사장을 선출하는 법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언론노조와 야권은 19대 국회 ‘언론청문회’를 요구하고 있다. 장기화하는 파업의 돌파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투쟁은 마무리가 잘 안되면 이전보다 더 나쁜 결과를 빚는다.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 헤어나오질 못한다. 파업이 장기화하고 있지만 지금부터의 투쟁이 더 중요하다. 언론청문회는 청문회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청문회 다음에 2단계로 나갈 의지와 힘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야당도 지금의 방송파업이 우리 언론의 앞날을 좌우하고 민주주의를 살리느냐, 죽이느냐 하는 승부처로 삼아야 한다. 청문회가 출구전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국회 청문회가 사안의 마무리 수순으로 활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방문진이나 KBS이사회를 실질적인 독립기구로 만들고 거기서 사장을 선임하도록 하는 전 단계로 청문회는 유효하다.”
박근혜 위원장 정수장학회 청산 없이는 언론문제 말할 자격 없어-정수장학회 사회환원 목소리가 높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태도를 어떻게 보나.“다른 무엇보다도 박 위원장은 정수장학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박 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면 정수장학회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언론민주화든, 공정언론이든 언론문제에 대해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이사장을 그만 둬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을 납득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과 최필립 이사장의 대화를 봐도 최필립이 박 위원장의 아바타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백보를 양보해 설사 정수장학회가 자신과 무관하다 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언론사를 소유한 장학회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정수장학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지난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보나. 대선에서는 어떻게 힘을 모아야 하나. “시장권력이 국가권력을 완전히 눌러버리고 실질적으로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시점에 선거를 했다. 비정규직의 문제, 재벌의 산업구조, 남북관계 등 모든 것에서 그랬다. 그래도 조금 나은 방향으로 가는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 그렇지만 한국은 대통령 중심제고 대통령이 바뀌는 것이 정권교체이기 때문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러려면 지난 총선을 복기해봐야 한다. 민주통합당의 오만과 무능으로 패배를 자초했다. 통합진보당은 정파 패권주의에 매몰됐다. 양쪽이 그것을 청산해야 한다. 이번 대선은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비정규직, 양극화, 재벌개혁, 경제민주화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드러내 현 정권과 차별화해야 한다. 야권 단일화는 정치공학적인 면이 아닌 가치의 연대와 토론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내부 논쟁이 아니라 국민이 참여하는 토론을 통해서 국민을 주체로 세우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자신 또는 동료가 파업을 하고 있지만 기자들은 여전히 자신이 노동자라는 인식이 부족하다.“노조법에 따르면 노동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경제적 지위,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조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활동한다. ILO(국제노동기구)가 규정하는 노조는 정의구현, 인권실현, 사회민주화 등의 역할을 한다. 1980년대 KBS가 정권의 나팔수이던 시절 KBS 기자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KBS 다닌다는 말을 못했다. 그때의 사회적 지위 향상은 무엇인가.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면 손가락질 받는다. 사회적 지위 향상은 곧 공정보도 진실보도를 하는 것이다. 언론사 노조의 임무는 언론이 언론으로서 기능을 다하게 하는 것, 즉 공정보도와 언론민주화의 중심체가 되는 것이다. 그 일을 하는 구성원이 언론 노동자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언론노동자가 아니다.”
-국회의원 퇴임 후 어떤 역할을 하실 것인가. “광야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국회의원 하면서 이런 역할밖에 못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얼마만큼 의미 있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나라고 생각했다. 국회의원도 일정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광범위한 국민운동적 성격의 일도 필요하다. 임기가 끝난 후 그런 활동을 좀 더 본격적으로 하려고 한다. 평등, 통일, 평화 세 방향이다. 평등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운동을 구체화시킬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통일은 6·15공동선언에 연합과 연방에 대한 낮은 수준의 합의가 돼 있기 때문에 좀 더 발전된 운동을 하고 싶다. 이 세 가지 운동을 하는 모임을 사단법인 형태로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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