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편향적 보도, 기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
석달 사이 두번 해고…박성호 MBC 기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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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호 MBC 기자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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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외면 당하는 언론인 될 수 없어
시용기자들 현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지금이 제 인생 최대의 시련기 같습니다.”
박성호 기자는 석 달 사이에 두 번의 해고를 당한 데 대해 담담하지만 또박또박한 어조로 답했다. 마침 인터뷰를 한 1일은 박 기자가 ‘뉴스투데이’ 앵커로 시청자와 만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1995년 MBC에 입사해 정치부 국회반장으로, 사회부 시경캡으로, 지난해에는 아침뉴스 앵커까지 맡았던 그는 불과 석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닥친 두 번의 해고라는 컴컴한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첫 해고(2월)는 제작거부를 이끈 이유로, 두 번째는 시용기자 채용 반대를 주도한 이유였다. “속상하다. 담담하려고 하는데 두 번째 당한다고 해서 무덤덤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속상하다. 인생의 최대 시련기 같다. 가족한테 미안함이 크다.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똑같은 상황이 와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이 일로 내가 더 단단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살아오면서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기자로 일하는 게 1순위였던 내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게 가장 크다.”
-MBC 기자회가 지난 1월 주도한 제작거부가 총파업의 불씨가 됐다. “기자회는 친목단체의 성격이기 때문에 노조처럼 투쟁을 하는 조직도 아니었다. 그런 조직이 폭발한 것은 지난 한 해 MBC 기자라면 누구나 공유할 만한 정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뉴스가 망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타 방송사에서 다 나가는 뉴스가 MBC에서는 나가지 않고 정권 편향적인 보도가 일정한 흐름으로 계속됐다. 공영방송 기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이 터져도 청와대 해명에 일리가 있다며 취재조차 하지 않은 게 MBC의 현실이었다.”
-시용(試用)기자 채용을 놓고 MBC 안팎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MBC 기자들의 신입과 경력 비율은 6대 4일 정도로 경력기자에게 문호가 열려 있다. 우리가 경력기자를 반대하고 MBC 공채출신을 선호하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게 결코 아니다. 파업 중에 이뤄지는 사실상의 대체인력 투입의 채용방식에 반대하는 것이다. 언론인들이 공정방송 수호를 위해 마이크를 내려놓고 파업을 하고 있는 도중에 현재의 MBC에 들어오는 것은 김재철 체제를 연장시키는 도구로 쓰일 수밖에 없다.”
MBC는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임시직 기자를 채용했다. 1차에서 4명을 뽑았으나 1명이 퇴사했고, 2차에서도 6명을 뽑았으나 2명이 회사를 떠났다. 이들은 “이런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고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3차로 MBC가 16명을 채용한 시용기자는 1년 동안 채용한 뒤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제도이지만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논설위원들조차 “아무도 1년 뒤 이들의 정규직 전환을 장담할 수 없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시용기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일단 채용이 됐으니까 우리가 나가달라고 할 명분은 없다. 여러 차례 호소를 했다. 그래도 왔으니 지금 MBC 상황을 잘 보고 우리들이 했던 얘기가 헛소리였는지 5층 보도국 생활을 겪으면서 좀 더 깊이 고민했으면 한다.”
-시용기자 반대 집회를 주도하다가 권재홍 보도본부장과의 충돌이 빚어졌다.“슬픈 일이다. 얘기를 듣기 위해 종일 기다렸다. 그러다가 퇴근하는 차량 앞에 서서 마이크 들었다. ‘선배, 한 마디만 해주세요’라고 애원했다. 다음날 뉴스데스크 톱뉴스에서 우리는 폭도로 묘사돼 있었다. 사측은 물리력 행사라고 말하지만 차량진행을 20분 동안 가로 막았을 뿐이다. 폭도로 묘사당한 우리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서 언론중재위원회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MBC의 현실이 집약된 슬픈 자화상이다.”
-권 본부장과 관계는 어땠나.“편집부에 있던 시절, 권재홍 선배를 부장으로 모셨다. 좋아했다. 권 선배는 합리적이신 분이었다. 일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며 늘 긍정적이고 유머가 있는 소탈한 분이셨다. 그런 권 선배와 대척점에서 싸우게 된 것에 놀라워하고 있다. 내 해고의 주역처럼 됐기 때문에 권 선배를 인간적으로 미워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사람을 미워하면 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서…. 사측 대변인인 이진숙 선배도 마찬가지다.”
-파업 이후 MBC 보도국의 불협화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많은 기자들이 ‘다시 올라가면 못 본다. 인적청산을 해야 된다’는 격앙된 얘기들을 하는데, 저는 일의 옳고 그름을 바로잡는 것은 필요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끝까지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은 안 된다고 본다.”
박 기자가 두 번째로 해고된 지난달 30일, 그를 위로하는 조촐한 술자리가 열렸다. 한 후배는 이런 말을 하는 박 기자에게 “선배가 예수예요?”라며 버럭 화를 냈다. 박 기자는 조용히 후배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이 내전이 끝나고 나면 MBC를 재건해야 한다. 그걸 잘하려면 증오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
-일각에서는 파업을 접고 복귀해서 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지금 우리가 올라가면 파업하기 전보다 더 악화될 것이다. 파업중에 단행한 인사와 조직개편은 회사에 반대하는 기자들을 억누르기 위한 시도로 이어졌다.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일상투쟁을 하자는 것은 말은 좋으나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할 것인가. 기자회장을 하면서 느낀 건 전망하지 말자는 거다. 전망을 해봐야 틀리기 쉽고 매일매일 오늘에 충실하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해야 한다.”
-기자 박성호가 생각하는 기자정신은.“공영방송의 생명은 불편부당한 보도,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기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만 제대로 하면 세계 최고의 매체가 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은 최소한의 보도원칙을 훼손해버린 상태다. 기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싸움이고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싸움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나.“많은 후배들이 기사 쓰고 취재하는 것에 목말라 있다. 일에 미쳐 있는 사람들인데 월급도 못 받아가는 파업을 누가 좋아하겠나.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이 넘쳐난다.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가족들도 지치지만 더 이상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언론인으로 살 수는 없다. 이렇게 상처도 나고 피도 나고 목도 달아나지만 우리 힘으로 이뤄낼 수 있다면 이보다 값진 게 어디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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