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상대 손배소 '10억'이 대세
정치인·연예인 등 유명인일수록 금액 높아…"언론 길들이기" 비판도
요즘 언론사 또는 기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소송 당사자가 정치인(정당)이나 연예인 등 유명인일 경우 청구금액 10억원이 대세다.
지난 13일 민주통합당이 동아일보와 소속 최모 기자의 오보에 대응해 10억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 대표 사례다. 지난달 초 탤런트 이미숙씨가 이상호 기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도 10억원이었고, 한명숙 전 총리가 2010년 동아일보와 검찰을 상대로 낸 소송도 마찬가지 금액이었다.
2008년 삼성이 프레시안을 상대로 낸 소송도, 2009년 MBC ‘PD수첩’, ‘불만제로’가 정부와 기업 등에 당한 소송도 10억원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7년 11월 자신의 누드사진을 게재한 문화일보를 상대로 신정아씨가 제기한 소송도 역시 10억원이었다.
왜 하필 10억원을 요구하는 것일까. 객관적으로 정해진 기준은 없다. 언론사의 기사로 인한 명예훼손은 특정 잣대로 잴 수 없는 정신적인 피해이기 때문이다. 재판과정에서 법원이 피해자의 지명도와 지위, 가해자인 언론사의 지명도와 발행부수, 취재과정의 사실 확인 노력 등을 감안해 판단하는 것을 고려하면 소송 당사자가 유명인 또는 유력 정치인(정당)일수록, 상대가 영향력 있는 언론사일수록, 기사가 악의적일수록 금액이 높은 경향이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언론위원장을 지낸 한명옥 변호사는 “10억원은 자신이 당한 피해 정도와 항의의 강도가 크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금액”이라며 “주관적인 것일 뿐 법원의 판단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도 동아에 제기한 10억원이 상징적인 금액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민주통합당 인권법률국 한 관계자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청구금액을 정하기는 어렵다”며 “당 지도부가 오보의 정도를 고려해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 상대의 소송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일반인이 제기하는 민사소송의 경우 1억원 미만이 대부분이다. 민사소송 청구금액이 높을수록 법원에 납부하는 인지대와 송달료도 비례해서 높아지기 때문에 무작정 높은 금액을 청구할 수는 없다. 10억원은 부담능력과 상징성이 균형을 이룬 현재 시점 최고액으로 볼 수 있다.
10억원을 청구하면 실제 어느 정도 수준에서 손해배상액이 결정될까. 이것 또한 기준이 없다. 재판과정에서 조정이 성립하거나 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많다. 2011년 항소심에서 조정이 성립된 신정아씨 사건의 경우 법원은 문화일보가 신씨에게 800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 사건 1심 판결은 손해배상 1억5000만원이었다. 삼성-프레시안간 소송은 1심에서 손해배상 1500만원이 나왔고, 항소심에서 조정을 거쳐 정정보도문을 싣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1심 판결만 보더라도 신정아씨 사건의 1억5000만원이 최고액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10억원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를 비판한 경우 법원은 대부분 언론사와 기자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
10억원이 상징적인 것이라고 해서 소송을 당하는 쪽의 압박이 덜한 것은 아니다. 요즘은 언론사와 기자를 함께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아 한 관계자는 “10억원이 대체 평생 만져나 볼 수 있는 금액이냐. 실제 소송을 당해보면 10억원에 짓눌리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당사자는 펜이 제대로 나가지 않는다”며 “10억원 소송은 언론사를 압박하는 정치적 액션”이라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동아 소송 건은 동아가 오보를 인정한 가운데 쟁점은 정정보도가 게재될 위치다. 민주통합당은 오보가 나간 1면을 고집하는 반면 동아는 1면 정정보도는 유례가 없다며 2면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1면이냐, 2면이냐에 따라 10억원 소송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는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에 대한 언론사의 실수, 의도적인 음해 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양측 관계자 모두 인정한다.
한명옥 변호사는 “거액의 소송을 당하면 기자가 위축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잘못된 기사로 소송 당사자가 입는 피해가 먼저 고려돼야 한다”며 “팩트를 충분히 확인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만이 기자들이 소송에 대처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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