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청년이 일기장에 무턱대고 썼던 인생계획. 이걸 나침반 삼아 조금씩 걷다 보니 20년차 기자가 돼 있었다. 이해승 청주MBC 기자는 다시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디뎠다. 72일간 남미대륙을 일주하고 최근 책 ‘까칠한 저널리스트의 삐딱한 남미여행’을 펴냈다.
72일간의 남미여행은 충동적이었다. 2014년 개기월식을 보고 나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몰려왔다. “가장 먼 곳을 여행하고 싶었어요. 바로 남미였죠.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날 최저가 항공권을 예약했습니다. 대책 없이 저지르고 뒷수습하는 스타일이라서요. 하하.”
마침 몇 달 뒤 안식 휴가를 쓸 수 있었고 여기에 남은 연차를 붙여 시간을 냈다. 14살 아들과 동행하기로 해 여행 한 달 전부터 담배도 끊었다. 뜬금없는 남미행에 불편한 기색이던 아내도 이 기자와 아들이 출발하고 30여일 뒤에 페루 마추픽추에서 합류했다.
“사실 취소할까 고민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항공권이 최저가라 환불이 안되더라고요. 후회하지 않으려면 후회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 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죠. 그렇게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일정은 브라질부터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쿠바, 멕시코로 숨 가쁘게 이어졌다. 남미 하면 떠오르는 이과수 폭포나 안데스 산맥, 마추픽추, 우유니 사막은 역시나 근사했다. 하지만 “70일로 남미 일주는 버겁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워낙 거대한 대륙인 데다 잉카, 아스텍, 마야 문명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곳이잖아요. 지구에서 가장 큰 열대우림 아마존, 가장 긴 산맥 안데스, 가장 건조한 곳인 아타카마 사막. 실제로 보니 더 굉장했습니다. 1~2년째 남미를 도는 여행객들을 만났는데, 그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죠.”
긴 여운을 안고 귀국한 그는 다시 남미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남미여행기를 쓰면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는 어릴 적 꿈이 있었지만, ‘쟤도 책 냈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기자 20년차, 겉으론 안정돼 보이지만 쉰 가까이 되니 마음이 허전할 때가 많았어요. 그 빈 공간을 여행하고 기록하는 것으로 채우려고요. 그 자체에서 만족감을 얻고 있거든요.”
그는 두 번째 책도 준비 중이다. 이번엔 일본 전국 여행기다. 벌써 그다음 여행지까지 물색해 놨다. 그동안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순간의 즐거움에 치우쳤다는 그는 매년 여행할 때마다 책을 낼 계획도 세웠다.
“책을 쓰는 게 최고의 공부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보람과 즐거움도 느꼈습니다. 죽을 때까지 직접 쓴 책을 쌓아 제 키(176cm)를 넘기겠다는 목표도 잡았어요. 70세쯤이면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기대해 주세요.(웃음)”
김달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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