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관련 보도는 정국 운영과 정책에 대한 여론을 형성한다. 기자는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정보 획득과 판단을 돕기 위해 정치인을 만나 취재한다. 그렇다면 기자는 취재 대상이 된 정치인이 어떤 의도에서 선정된 것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데스크는 취재기자들이 접촉한 여러 정치인 중 그날의 뉴스에 해당 정치인의 발언을 내보내기로 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왜 이 사람을 노출시켜 주목받게 하는지 타당한 설명을 내놓을 수 없다면 그 날의 그 정치 뉴스는 민주주의를 속인 셈이다. 의도적으로 또는 결과적으로.
요즘 횡행하는 정치인들의 막말을 무책임하게 옮겨 담는 인터뷰 기사는 우선 현실과 실체를 반영하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이 역대급 천재인지 청와대에 좌파가 가득한지 확인조차 없는 기사는 정치인과 언론의 야합으로 만들어진 허상을 국민에게 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허상을 실체로 믿고 천재로 숭배하거나 좌파로 두려워하는 등 현실에서의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또 제한된 지면을 차지하고 다른 정치 정보와 정치 담론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을 차단한다. 손실은 국민과 민주주의에게 돌아가고 그 날의 그 정치 뉴스는 민주주의의 적(敵)이 된 셈이다. 의도적으로 또는 결과적으로.
독자는 가짜 뉴스에 지쳐가고 있다. 지면과 스크린에 등장한 기사가 정확한 사실인가를 따져 물어야하니 고단하다. 그런데 이제는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건지, 거기서 어떤 추론과 결론을 이끌어내도 괜찮은 건지 고심해야 한다. 정치 뉴스가 정치 현실을 탄탄하게 그려내지는 못하고 정치 비린내만 가득한 아무 영양가 없는 ‘찌꺼기 뉴스’에 파묻히고 있다. 정치 혐오만 키우는 찌꺼기 뉴스로 정치면이 도배되는 걸 막아야 한다. 실패한다면 우리의 정치 뉴스는 민주주의의 독(毒)이 되는 셈이다. 의도적으로 또는 결과적으로.
어느 것이 ‘알맹이’고 어느 것이 ‘찌꺼기’인가를 구분하는 건 본래 어려운 작업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란 서로 상반되는 가치가 충돌하고 이해가 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몇 정치인의 발언을 보도한 기사로 볼 때 어려워서 분별에 실패할 기사는 별로 없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건강한 판단 능력을 갖춘 민주시민의 존재에 의존하는 것이다. 막말을 반복하는 정치인을 띄우려 아까운 지면을 허비하지 말고 소중한 민주시민의 역량에 기여해야 한다. 우리가 왜 민주주의의 적이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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