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넷플릭스에 볼 게 많은데 기사를 왜 봅니까.”
언론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독자 인터뷰다. 새로운 플랫폼이 빠르게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독자와 시청자들이 신문과 TV에서 인터넷과 모바일로, 이젠 영상 플랫폼으로 갈아타고 있다. 언론도 변화에 뒤처질세라 트렌드를 따라가려 한 발 내딛지만, 수용자들은 열 발 앞으로 가고 있다. 급격한 변화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기자협회보가 새해기획으로 ‘잃어버린 독자를 찾아서’를 연재한 까닭은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하지 않고는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는 절박한 언론 현실 때문이다. 진단이 먼저다. 왜 언론은 그 많은 독자를 잃어버렸나. 첫째, 언론계 관행이다. 기존 관습을 지키려는 보수적 태도가 답답할 만큼 뿌리 깊다.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우물 안에 갇혀 나라 문을 걸어 잠갔던 구한말 위정자들의 꼴을 닮았다. 독자는 변화하고 있는데 신문과 TV 플랫폼에 갇혀 더딘 걸음을 걷고 있다. 둘째, 독자의 불신이다. 신문과 방송이 진실만을 보도한다고 믿었던 시대가 흘러간 옛 노래가 됐다. 사실을 비튼 왜곡 보도로 불신이 싹텄다. 정파적인 견해의 다름이 아니라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보도가 불쏘시개였다. “기사의 반은 믿고 반은 거른다”는 한 언론사 독자위원의 말이 뼈아픈 이유다. 셋째, 불통이다. 디지털 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공감인데 전통 미디어의 감수성은 공급자 시각이 지배적이다. 쌍방향이 아닌 일방적인 정보 전달 방식에 익숙하다. 독자들이 떠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위기를 체감하기 시작한 건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결정타였다. 이후 5년이 지났지만 국내 언론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 지금까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핵심적인 이유는 주저함이었다. 살얼음 위를 걷듯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얼음이 깨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변화의 걸림돌은 외적 환경뿐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쌓아온 기득권의 벽도 두텁다.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굳이 위험한 변화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안이한 태도가 심각하다. 독자는 떠나가는데 변화를 거부한 채 영원히 생존할 수 없다. 냉철한 이성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답이 금방 나온다.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저녁뉴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잃어버린 독자를 도대체 어디서 찾을 것인가. 먼저 독자와 호흡해야 한다. 기존의 공급-수용자 관점을 버리고, 미디어에 독자를 참여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 시작이다. 전문성을 갖춘 시민들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기사 기획을 고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험하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았던 길이 열릴 수 있다. 10명의 현인을 모으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독자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촉수를 세워야 한다. 다양한 독자의 성향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어떤 콘텐츠를 제작할지, 어떻게 유통시킬 것인지 전략이 필요하다. 전쟁터에 나가는데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나갔다가는 백전백패다. 전략을 세웠으면 가려운 곳을 정확히 찾아 맥락을 짚어주고 깊이 있는 분석기사로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면 된다. 마지막으로 독자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책상머리에 앉은 채로 세상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독자들이 노는 곳에 뛰어들어 뉴스 콘텐츠로 경쟁해야 한다. 단 한 번에 배부를 수 없다. 실패를 통해 배워야 할 때다.
언론은 그동안 사회의 변화를 선도해왔다. 쉼 없이 전진해왔다. 이제 또 다른 시험대에 섰다. 한치 앞도 안 보이지만 언론은 반드시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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