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싶었을 것이다. 결렬이 아니라고 말이다. 지난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청와대 얘기다. 넘겨 짚는 말이 아니다. 청와대의 입인 김의겸 대변인의 언행을 보면 드러나는 팩트다. 김 대변인은 결렬 당일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실장들과 함께 서명식을 시청한 뒤 입장을 내겠다”고 밝혔다. 결렬이 공식화되기 30분 전 시점이었다. 그리고 김 대변인이 기자실을 떠난 지 약 10분 뒤, 백악관은 결렬을 공식 발표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서였다. 결렬의 전조는 사실 전날부터 감지됐다. 이 같은 전조는 외교부 등을 통해 보고도 됐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결렬 당일까지 서명식을 시청하고 관련 환영 입장을 낼 준비를 했다. 백악관과 “빛 샐 틈 없이 공조하고 있다”던 청와대다.
문제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미 국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정보의 부재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청와대가 정보 부재를 넘어 정보 왜곡의 유혹에 빠지려는 것 같다는 문제의식이다. 미국 유력지의 서울특파원은 결렬 후 일부 외교안보 전문가들에게 “청와대의 제한된 정보에 톤을 맞춰 발제를 하다 보니 잘못된 기사를 써온 셈이 돼버렸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이는 비단 외신기자의 경우만이 아닐 것이다. 청와대에 상주하는 출입기자단도 마찬가지다.
출입기자단과 출입처는 미묘한 긴장의 공생관계다. 이 관계를 유지시키는 핵심 축은 서로에 대한 신뢰다. 상대가 나를 아프게 할지언정 거짓은 말하지 않을 것이며, 국익과 공익을 위해서 올바른 일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올바른 관계 구축이 가능하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 결렬을 둘러싼 청와대의 브리핑은 이런 신뢰에 균열이 가게 했다. 내신뿐 아니라 외신기자들 사이에서도 공감대가 있다는 점을 청와대는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백악관은 달랐다. 기민하게 움직였다. 결렬이 좋고 나쁜지를 판단하는 것은 대변인실의 영역이 아니다. 샌더스 대변인은 백악관 출입기자 중 회담장에 나와있던 풀기자에게 먼저 상황을 공지했다. “일정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먼저 꺼내면서다. 백악관 풀기자단은 이 한 마디로 방향을 제대로 잡고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과 출입기자단의 긴장관계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양측은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좋은 예를 보여줬다.
청와대에도 자성의 움직임은 감지된다. 김의겸 대변인은 결렬 후인 지난 4일 브리핑에선 “‘노딜’을 전망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고 답했다. 전날엔 “어디에서 매듭이 꼬였는지 하노이 회담 상황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바둑이라면 복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낙관 무드에 경도된 나머지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데 대한 자성의 분위기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보는 양날의 칼이다.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온갖 정보가 모여드는 곳이다. 그 정보를 국정을 위해 정의롭게 써야함은 다름 아닌 청와대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언론에 대해 흘리고 싶은 정보만 흘린다면 올바른 정보 문지기라 할 수 없다. 현재 청와대에서 언론을 담당하는 이들이 상당 부분 전직 기자들이다. 정부를 대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 알고 넘어갔을 터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만큼은 거둬야 할 때다. 때론 고언도 서슴지 않는, 줏대 있는 청와대 참모진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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