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불신

[언론 다시보기] 구정은 경향신문 선임기자

구정은 경향신문 선임기자.

▲구정은 경향신문 선임기자.

소셜미디어에는 날마다 언론보도를 팩트체크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팩트를 점검하는 것은 언론의 기능인데, 다른 무엇도 아닌 언론이 점검의 대상이 돼버렸다. 팩트가 틀린 기사가 너무 많으니 이젠 기자들이 어떤 의도로 뭘 어떻게 틀렸는지 시민들이 체크한다. 정치적 분열과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언론 기사와 팩트체크가 한쌍으로 묶여버렸다.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서 한국의 언론 신뢰도가 38개국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는 보도를 봤다. ‘뉴스 대부분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 비율이 한국에선 22%에 그쳤다. 5명 중 4명은 언론을 안 믿는다는 게 놀랍지도 않다. 이 조사결과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야말로 언론인들이 놀라야 마땅한 현실이다.


틀리고 왜곡된 보도가 너무 많다는 것을 언론인들도 부정하지 못한다. 일전에 팩트체크를 주제로 언론학 논문을 쓰고 있는 후배를 만났다. 언론사들이 자기네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팩트체크라는 형식을 이용하고 있는 실태를 조사하고 있었다. 팩트체크 자체가 매체 성향에 따라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팩트체크의 팩트체크, 혹은 팩트체크의 팩트체크의 팩트체크… 이런 것들이 줄줄이 이어지지 않을까.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로이터연구소 조사에서 언론 기사를 대부분 믿는다는 시민이 50%가 넘는 나라는 6개국뿐이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재작년 실린 팩트체크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1923년에 이 잡지가 창간될 당시는 19세기 말부터 유행했던 옐로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이 많았고, 미국 언론계에서 팩트에 충실하자는 흐름이 일어났다고 한다. 흥미로웠던 것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게 초창기엔 ‘여자들의 일’이었다는 점이다. 낸시 포드라는 여성이 발행인 비서로 일하면서 기자들에게 기사 스크랩을 해줬는데, 그러다가 보도에 나오는 날짜나 사람 이름 등을 확인하는 일로 업무가 확대됐다. 기자들은 모두 남성이었는데 포드를 비롯해 당시의 팩트체커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사실을 확인하는 것을 부수적인 일 정도로 여겼던 것일까. 아니면 사실을 확인해서 쓰는 저널리스트의 본분이 상식으로 통하던 시대였기에 별도의 팩트체크는 보조적인 일로 여겨졌던 것일까.


낸시 포드 이후 100년이 지났는데 언론은 어느 때보다도 신뢰를 잃었다. 사실 한국 언론은 100년 전에도 왜곡과 오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언론의 신뢰도는 어디에서 올까. 언론은 지금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 그런데 어느 야당은 정권이 언론을 장악했다고 하고, 그걸 또 어떤 언론들은 받아적는다. 어떤 매체는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바닥이라는 기사에다가 ‘단독’이라는 말까지 붙여 인터넷에 올린다. 독자의 신뢰를 얘기하기조차 민망하다. 시민들은 100년간 불신을 쌓아오다가 이제 겨우 입 밖으로 꺼낼 도구를 찾은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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