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이렇다. “범죄자를 인터뷰하거나 내용을 재구성 혹은 극화할 때 생존 피해자나 고인의 직계 가족과 접촉해 보도 계획을 알려야 한다. 경찰 등 중재자가 있더라도 피해자가 고지를 받고, 우리에게 접촉할 수 있는 정보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8조 3항 7호, 피해자 보호 중) “사전 약속 없는 뻗치기(Doorstepping)는 범죄나 중대한 잘못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으며, 인터뷰 요청이 불가능했거나, 사전 접근 시 조사에 실패하거나 혐의를 피할 수 있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을 때, 고위 편집인의 승인을 받아 진행할 수 있다.” (7조 3항 37호, 사전약속없이 뻗치기)
이처럼 BBC 가이드라인은 취재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판단 기준이나 대처 방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모든 근로자는 이를 숙지하고 준수한다는 조항이 담긴 계약서에 서명해야 하고, 최신 사례를 소개하는 관련 교육을 의무로 듣는다. 백 년도 안 된 한 나라의 공영방송이 전세계 뉴스 표준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국내 일간지 사회부 재직 시절, 경찰이 내는 사건 보도자료를 쓰면서 담당 형사에게 사실 관계를 재확인하는 게 최선인 줄 알았다. 뻗치기를 할 때 사생활 침해를 눈감으며 ‘공익’이라는 막연한 단어에서 명분을 찾았다. 당시 내 행동의 근거는 윤리 강령이나 보도 준칙에 없었다.
한국 언론의 보도 준칙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추상적이라는 지적은 늘 있었다. 세월호 이후 마련된 ‘재난 보도 준칙’(2014)도 같은 비판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올해 첫 날, 한국일보는 편집강령을 개정하고 취재보도준칙을 새로 마련했다는 사고를 실었다. 세월호 참사와 미투 운동,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언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무거운 질문들이 던져진 뒤라 기대가 컸다. 하지만 2020년의 새 보도 준칙도 현장의 고민을 해결하거나 현실적인 길잡이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의견수렴 과정에 참여했다는 5년 차 이내 한 기자는 “도덕적 구호들의 나열이라 실제 부딪히는 문제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결국 도제식으로 가르쳐줄 좋은 선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조직한 ‘저널리즘 트러스트 이니셔티브’는 지난해 12월 ‘좋은 언론’ 선별 기준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했다. 한국기자협회를 포함한 전세계 120개 전문가 및 기관이 14개월에 걸쳐 마련한 이 문서는 가이드라인을 거의 모든 쪽에서 언급하고 있다.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한 것이다.
‘좋은 언론’ 자가 테스트에는 이런 질문들이 있다. 누구든지 제작 가이드라인에 접근할 수 있는가. 제작진에게 요구되는 행동 지침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는가. 제작 단계별 책임 구조를 잘 설명하고 있는가. 가이드라인 교육 및 재교육을 진행하고 있는가. 여기에 자신 있게 모두 ‘네’라고 답할 수 있는 한국 언론이 있을까. 근본을 바로 세우는 일에 비용과 시간만 탓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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