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의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사가 “악의적”으로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토록 한다. 언론의 자유를 팔을 휘두를 자유로, 인격권 침해를 그 팔에 맞아서 다친 코에 비유하면, 흉기를 사용해 팔을 휘둘러 타인의 코뼈를 부러뜨린 경우 치료비(전보적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엄한 금전적 책임(징벌적 손해배상)을 물어 다시는 그런 행동을 못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다. 팔 휘두를 자유를 제한하는 법적 장치들이 여럿(징역형, 벌금형, 손해배상, 기사삭제 청구, 정정보도·반론보도·추후보도 청구) 마련돼있지만, 여전히 충분치 않다는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악의적”은 “허위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왜곡보도를 하는 것”으로 정의됐다. 언론사가 허위사실을 인지하고 보도했는지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 우선 ‘허위사실’부터 간단치 않다. 미네르바 사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허위사실이 언제나 명백한 관념은 아니라고 했다. 영화 속 배우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묻지만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가 현실인 것처럼, 허위와 진실은 99개의 얼굴을 가지고 움직인다. ‘허위의 인식’을 판단하기는 더 어렵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횡령 의혹을 제기했던 정봉주 의원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됐다. 징역 1년형을 확정한 대법원은 발언자의 속마음(허위의 인식)을 알 길은 없으니 공표사실의 내용, 소명자료의 내용, 발언자가 밝힌 출처 및 인지 경위 등을 토대로 발언자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공표 경위, 시점 및 파급효과 등 제반사정을 모두 종합해 ‘추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판별기준이 두루뭉술한 법은 사람에 따라 달리 쓰일 가능성이 높다. 당내 경선과정에서 동일한 의혹을 제기했던 박근혜 의원은 기소되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언론 관련 민사 판결에서 법원이 가장 빈번하게 선고한 손해배상액은 평균 565만원이라고 한다. 이 금액의 3배인 1695만원이 선고되는 경우가 늘어나면 “악의적” 보도가 얼마나 줄어들까? 더구나 무차별적 인신공격을 쏟아내며 슈퍼챗으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유튜브 채널들은 ‘언론사’로 분류되지 않아 이 법안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한편, 법원이 유독 검사들의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는 연구도 있다. ‘납득하지 못할 영장 기각’이라는 방송 뉴스가 검사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공정한 법집행을 담당하는 검사, 기타 법조인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깊게 했다며 1억원을 배상하라고 한 판결도 있었다. 법 개정에 앞서 인격권 침해에 대한 적정 위자료 산정 기준을 논의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진 않을까?
개정안 대표발의자인 정청래 의원은 “30배, 300배를 때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십분, 백분 공감하지만, 부작용은 우려되고 실효성은 의문이다. 그렇다고 언론을 사유화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흉기를 마구 휘두르는 사람들까지 두둔할 생각도 없다. 그들은 팔을 자유롭게 휘두를 권리만 외치고 있지 않은가.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