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작가의 일갈… "정규직은 은총, 무조건 버텨"

[기자 그 후] (37) 김소민 작가 (전 한겨레신문 기자)

‘기자 그 후’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김소민 작가는 난처해했다. “제가 뭐 변변한 게 없는데.” 그럼에도 그가 인터뷰를 승낙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첫째는 신간을 홍보하기 위해서고, 둘째는 퇴사를 고민하는 이들을 뜯어말리기 위해서다. 인터뷰 말미, “퇴사를 고민하는 기자들이 많다”는 말에 역시나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그만두지 마세요. 정규직은 은총입니다. 무조건 버티세요!”

한겨레신문에서 13년간 기자로 일했던 김소민 작가는 현재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고 한겨레21에 고정 칼럼을 쓰는 등 글쓰기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삶이 불안하지만 한편으론 만족스럽다고 했다. /김소민 작가 제공


정작 그는 2018년 초, 마지막 직장을 그만두고 벌써 프리랜서로 4년을 꽉 채워 살았다. 스스로 규정하기론 “‘폭망(폭삭 망하다)’한 동시에 안 폭망했다고 생각하는”, 양가적인 삶이다. 이렇게 말해놓곤 사실 취직이 안 되는 걸 자기 합리화하는 거라고 변명하는데, 내심 만족하는 얼굴이 의심스럽다. ‘자기가 자기가 아닌 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으며, 자신의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다’는 에리히 프롬의 말까지 갈 필요도 없다. 역시나 그는 “24시간을 말아먹든지 말든지 하루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 누가 뭘 하라고 지시를 하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괜찮다”며 “나중에 죽을 때 하여간 좀 내 방식대로 살아봤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지 않느냐”고 프리랜서의 장점을 털어놓는다.


김 작가가 처음부터 프리랜서를 꿈꿨을 리는 없다. “한국 사회의 전형적 인간”이었던 그는 대학생 시절 무조건 취직 해야겠다 생각했고, 1999년 한겨레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했기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렸던 것도 있고, 워낙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여서 세상을 구경하고픈 마음도 있었다고 했다. 다만 그는 기자 시절을 ‘위축’, ‘소극적’, ‘자신감 부족’ 등으로 표현했다. 유식하고 신념도 가득 찬 주위 기자들을 보며 매번 부족함을 느꼈다고 했다.

김소민 작가의 신간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표지.


“2008년에 사회부 시청팀으로 옮겼는데, 하필 2009년에 용산참사가 터졌어요. 저 빼놓고는 능력 있는 기자들이 많아 잘 대처를 했는데 저는 그 때 한계를 많이 느꼈죠. 다른 직업은 자기가 일을 못 하면 손해를 자기만 보는데, 이 직업은 일을 못 하면 세상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많이 들었어요.”


결국 그는 그해 병가를 내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떠났다. 마음이 뜬 것도 그때부터였다. 다시 돌아와 편집부에 있다가 2012년 자비 연수 형식으로 독일 유학을 간 다음엔 아예 거기 눌러 살 작정으로 한겨레를 그만뒀다. “그렇게 그만두는 게 좋진 않은 것 같다.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말하고 싶다”는 김 작가는 한동안 독일과 부탄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왔고,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잠시간 일했다.


대책 없이 그만두고 월급 없이 살았던 첫 한 달은 그에게 엄청난 불안감을 주던 날들이었다. 사실 1년 정도 쉬고 재취업할 생각이었는데, 그럼에도 달에 2000원을 더 내고 빠른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마저 부담스럽다고 느꼈다. 이웃도, 동네 네트워크도 없는 한국에서 인간관계도 무너져갔다. 밉지만 항상 회사에서 만나던 사람들이 삶에 일정량은 필요하다는 걸 그 때 깨달았다. 다행히 전정윤 한겨레 기자의 추천으로 김 작가는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고, 한겨레21에 고정 칼럼을 쓰면서 파산과 고립을 막아냈다. 그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자 K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 등 한겨레 재직 시절부터 다양한 칼럼을 썼던 김 작가는 그동안 칼럼을 묶은 책도 몇 권 냈다. 최근엔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란 제목의 책을 펴냈다. 몸이 혐오와 차별의 근거가 되고, 각자의 인정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채찍질해야 할 도구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담담히 풀어낸 책이다. 그는 책에서 ‘정상’인 몸의 범주가 너무나 좁아서, 인간 취급이라도 받기 위해 우리 모두가 경쟁적으로 달리는 사회를 꼬집는다.


사실 그건 작가 본인에게 해당되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 역시 외모 콤플렉스가 있고, 대책 없이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에 화가 난다고 한다. 우리 스스로가 이미 존엄한 존재라는 걸 자각하는 데서 나아가 주위 사람들의 예의와 인정과 사랑이 필요한 건 그래서일 것이다. 그에겐 같이 하루 두 시간 반 운동하는 반려견 ‘몽덕이’나 존재 자체를 괜찮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그런 부류에 해당될 테다.


김 작가의 향후 계획은 뭘까. “계획 없다”고 단번에 대답한 그는 “바람이 있다면 책이 망하더라도, 또 망하더라도 계속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이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에 이 인터뷰의 또 다른 목적이기도 한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홍보를 한 번 더 강조한다. “책 구매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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