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까지 1년… 허황옥의 결혼 항해, 설화 아닌 역사였다

[시선집중 이 사람] 영화 '허황옥 3일, 잃어버린 2천 년의 기억' 제작한 진재운 KNN 기자

영화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에서 열린 ‘허황옥 3일, 잃어버린 2천 년의 기억’의 언론·배급 시사회 자리에서였다.


가야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은 고려시대,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그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실려 있다. 아유타국의 공주로, 기원 후 48년에 수행원들과 배를 타고 가락국에 왔고 왕후가 돼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낳았단 이야기다. 다만 아유타국이 인도인지, 또 허황옥이 가야의 불교 전래에 기여했는지에 대해선 그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허황옥의 결혼 항해도 신화나 설화로 간주됐다.

진재운 KNN 기자가 제작한 ‘허황옥 3일, 잃어버린 2천 년의 기억’이 오는 12일 개봉한다. 사진은 영화 ‘허황옥 3일...’의 한 장면.


‘허황옥 3일…’은 그 3일의 결혼 항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정밀한 역사 기록임을 확인한 영화다. 30여편의 환경 다큐멘터리와 두 편의 영화를 제작했던 진재운 KNN 기자가 처음으로 만든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이기도 하다. 1995년 PSB(현 KNN)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진 기자는 입사 직후 편집기와 사랑에 빠져 그동안 꾸준히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다. 지난 2013년엔 영화 ‘위대한 비행’으로 뉴욕페스티벌 최고연출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환경 다큐멘터리에 정통한 그가 역사 다큐멘터리에 도전한 건 지난해 이맘때쯤 만난 도명스님과의 인연 덕분이었다. 허황옥을 몇 년 동안 연구해온 도명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 기자는 “귀한 분을 만났다” 느꼈고 “함부로 흘려들을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딱히 종교는 없었지만 중국과 고구려-백제-신라 순으로 전래된 불교보다 최소 300년 이상 앞선 가야 불교의 실체를 확인해보자 결심했다.

진재운 KNN 기자가 제작한 ‘허황옥 3일, 잃어버린 2천 년의 기억’이 오는 12일 개봉한다. 사진은 지난 9일 서울 중구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에서 열린 언론 시사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진재운 기자.


다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46편의 국내외 논문과 50여권의 관련서적을 조사하는 건 기본이었고, 인도부터 김해까지 선박 항해가 가능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2000년 전의 바람과 해류를 정밀하게 복원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지명 확인을 위해 1954년부터 1991년까지 항공사진 100여장을 확보해 2000년 전 김해평야 주변의 지형을 복원, 산 속 숨겨진 절터에서 기와조각들을 찾아내기도 했다. 진 기자는 “늘 여유 있게 다큐를 만들어왔는데 처음으로 역사 다큐를 접해보니 여유가 없었다”며 “고증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뭔가가 도출돼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노력은 그러나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고고학에 인류학, 금속학, 해양학, 종교학까지 융합해 삼국유사에 대입하자 역사적 실체가 도출됐다. 인도와 가야는 허황옥의 도래 훨씬 전부터 이미 철기와 구슬 등을 바탕으로 활발한 교역이 이뤄지고 있었고, 김해를 중심으로 바닷가에 위치한 여러 사찰에서도 가야불교의 증거물들이 확인됐다. 진 기자는 이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지난해 연말 KNN에서 방송했다. 다만 45분 만에 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숨 가쁘게 느껴져 좀 더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93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허황옥 3일…’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진 기자는 “역사를 보는 관점에도 다양성이 필요한 시점이고 이제 관련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한다”며 “가야 불교의 실체를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5편의 다큐를 추가로 준비하고 있다. 최소 1년 반 내지 2년 정도가 걸릴 것 같은데,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제대로 들춰낼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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