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1주일 논의한 이유는…

[영남일보 신춘문예, 장기복역수 당선]
사측 "당선자의 죄와 무관한 재능을
언론이 단죄할 게 아니라 판단했다"

2023 영남일보 문학상 시 부문에 교도소에서 장기복역 중인 한이로(필명)씨가 당선되며 화제가 됐다. 장기복역수의 수상이란 국내 신춘문예 100여년사에서도 유례가 드문 일을 두고 신문사는 작품성과 별개로 수상자의 특수한 신분에 따른 파장, 리스크에 대한 고민을 안할 수 없었다. 편집국 간부는 물론 경영진 논의까지 이른 지난한 숙고의 ‘과정’이 필요했다.


매체는 지난 2일 ‘영남일보 문학상 詩 부문, 장기복역수 한이로씨 ‘데칼코마니’ 수상’ 기사<사진, 관련기사 링크>를 신문 1면 톱에 배치하며 2023 신춘문예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당선작 전문과 수상소감, 심사평을 전한 신문사는 5일 인터뷰, 6일 사설을 통해 한씨의 수상을 크게 조명했다.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1973년생 한씨의 당선은 그만큼 이례적이었다. 앞서 시 1702편, 단편소설 203편 등이 접수된 올해 문학상 심사결과가 지난달 20일 나왔고 영남일보는 이날 수상소식을 전하다 한씨의 신분을 알게 됐다. 백승운 영남일보 문화부장은 지난 6일 본보와 통화에서 “연락을 했더니 본인이 아니라 한씨의 시 선생님인 이용헌 시인이 전화를 받아 ‘재소자’란 얘길 전해왔다. 당황스러웠다. 저희 신춘문예 역사가 수십년인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일단 논의해보겠다’고 한 후 전화를 끊고 회사에서 일주일 정도 논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혹시 모를 피해자 등에 대한 2차 가해 소지, 등단 후 활동이 어려운 여건, 신춘문예 취지 부합여부 같은 고민이 들었다. 재소자에 대한 응모 자격제한은 없었지만 언론사에 책임이 돌아올 수 있는 문제였다. 시에 “경쾌한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정서의 파동을 지닌 작품”이란 평을 했던 본심 심사위원들은 “문학이 교정의 역할을 한 상징적인 사례”라며 당선 시키자는 의견이었다. 반면 편집국 간부들은 ‘예기치 못한 변수를 회사가 감수할 수 있을지’, ‘언론이 이 사람의 시까지 단죄하는 게 옳은지’를 두고 갈렸다. ‘반반’으로 나뉜 거수투표 끝에 경영진 판단을 묻고서야 가닥이 잡혔다. 백 부장은 “범죄에 대해선 수감생활을 하며 대가를 치르고 있는데 관련 없는 문학적 재능을 언론이 재판하듯 단죄할 게 아니란 판단이 있었다”며 “범죄인을 계속 범죄인으로만 바라보는 협소한 시각은 언론사가 지닐 태도가 아니고 사회가 안아줄 필요도 있다고 봤다”고 배경을 전했다.

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자 한이로(필명)씨가 영남일보에 보낸 편지. /영남일보 제공


‘어떤 사람인지 직접 봐야겠다’는 마음도 있던 터 인터뷰를 진행키로 했다. 사회부와 협업을 해오던 백 부장은 지난달 28일 임성수 사회부장과 부산교도소를 찾아 “줄 마스크를 끼고 스님처럼 머리를 민” 한씨를 만났다. 접견 시간은 25분 남짓, 실제 인터뷰엔 10~15분 가량을 겨우 썼다. 이날 대화, 이용헌 시인과의 통화와 더불어 사전 질문지에 한씨가 적어온 답변, 편지를 교도소 검열을 거쳐 며칠 후 전해 받으면서 기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한씨는 영남일보와 인터뷰에서 “시인이라는 새로운 꿈과 목적이 있어 나 자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형기를 마쳐도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보속(補贖)하며 살아가는 게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관련기사: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기복역수 한이로씨 인터뷰] 창살 안 마지막 몸부림 "남은 삶, 詩 쓰며 속죄")


지난 6일자 영남일보 사설 제목은 ‘본사 문학상 당선 장기복역수, 세상과의 소통을 응원한다’였다. 이번 결정은 한 시인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평가이지만 복역 중인 개인이 새로 찾은 길에 대한 한 언론의 지지 의미도 갖는다. 당선작 발표 후 매체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문학의 역할’에 관심 갖는 지역·전국의 문단 반응을 보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시집 출간 관련 연락도 온다. 사양세가 뚜렷한 최근 신춘문예가 이만큼 이슈가 되고 그 자체로 어떤 메시지를 남긴 일은 드물다.


백 부장은 “2018년 지역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가 취소되는 일을 겪은 사람을 우리마저 외면하면 이 사람이 시를 중단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변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진 좋은 평가가 많다. 특히 문화부에서 신춘문예는 버겁고 괴로운 일인데 사람 한명이 변하는 과정을 보며 숙제하듯 할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후속보도와 별도로 사회부와 협조로 교정문화를 살피거나 문화부 자체로 자기만족 이상 차원에서 문학의 역할과 가능성을 살피는 기획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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