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인기 스토리 창작자가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

25일 팩트스토리 주최 '스토리와 리얼리티-창작자를 위한 취재와 리서치 컨퍼런스'

“저널리즘과 스토리 시장이 만나는 아주 작은 연결점이 있다. 그 이상 큰 단위는 아닌 거 같지만 그 다리는 이야기 논픽션이다. 웹소설, 웹툰 작가가 캐릭터 장면과 행동을 창조한다면 내러티브 논픽션 작가는 그날의 (취재원의) 양복 색깔까지 물어서 팩트를 개더링하고 구축해야 한다. (다만) 스토리텔러로서 관점과 심장을 갖고 취재하고 전달해야 한다.”


고나무 팩트스토리 대표는 25일 ‘스토리와 리얼리티-창작자를 위한 취재와 리서치 컨퍼런스’에서 “더 많은 기자들이 이 장르에 뛰어들길 바란다”며 이 같이 밝혔다. 직업 소재, 범죄스릴러 웹소설·웹툰 및 실화 스토리 기획사인 팩트스토리가 주관한 이날 행사는 현재 콘텐츠 시장에서 ‘먹히는’ 작품들의 작가, 제작자들이 현직 창작자, 기획자 등을 상대로 여러 노하우를 전하는 자리였다. 한겨레 기자 출신으로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원작 작가이기도 한 고 대표가 ‘취재와 리서치를 일로 하는 민간직업군’으로 기자를 꼽으며 한 발언은 언론 업의 결과물이 매혹하는 콘텐츠가 되기 위한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언급한 쪽에 가깝다.

실화 스토리 등을 기획하는 팩트스토리가 25일 ‘스토리와 리얼리티-창작자를 위한 취재와 리서치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사진은 웹툰 <닥터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와 영화 <밀정> 제작사 이진숙 대표의 대담 모습. /팩트스토리 제공

“취재 단계는 모든 이야기에서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인식은 모든 스피커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확인됐지만 팩트를 다루는 법과 목표가 달랐다. 뉴스에선 팩트라면 나열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지만 ‘스토리’에선 아니다. 전문직 소재 웹툰 <디자이너><동네변호사 조들호>의 헤츨링 작가는 6·25전쟁의 전쟁 과정과 사망자 및 이후 사회변화를 조명한 이야기, 이 전쟁에서 탱크운전병이란 직업을 취재해 만든 이야기를 비교하며 후자를 선호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같은 시대에 살아도 증권트레이더와 조직폭력배가 보는 세상은 다르고, 직업물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독자에게 공유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처음엔 취재원에게 이야기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원하는 부분만 발췌하려 했는데 오히려 혼선이 왔고 이후부턴 전체 스토리 공개 후 함께 의논을 하는 식으로 진행하며 가상이지만 실제와 같은 모델을 구현하고 콘티를 짜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냄새가 느껴질만큼의 묘사를 위해선 취재가 불가피했다"고 했다. 이어 “많은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생각을 중하게 보지만 사실이란 규칙을 엄중히 지킬수록 이야기를 잘 조명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규칙에 대해 뉴스만큼 경직될 이유는 없다는 게 ‘이야기꾼’들의 중론이다. 현직 의사로 드라마 <무빙>을 자문한 김응수 웹툰 스토리 작가는 “중요 캐릭터 중 한 명에 대해 총을 맞고 즉사하진 않지만 타격을 줄 수 있는 심장의 해부학적 위치를 제작진이 물어 답을 해줬다”며 “사실 정확히 맞는다고 해도 꼭 그리 되리란 법은 없다. 드라마적 개연성만 있다면 사람들은 다 이해를 한다”고 했다.
오히려 중요한 부분은 캐릭터의 매력, 캐릭터 간 ‘케미’, 이야기 자체가 사람들에게 소구하는 지점이다.

실화 스토리 등을 기획하는 팩트스토리가 25일 ‘스토리와 리얼리티-창작자를 위한 취재와 리서치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사진은 웹소설 <이것이 법이다>의 자카예프 작가 강연 모습.

누적 1억5000만뷰의 웹소설 <이것이 법이다> 자카예프 작가는 “판사가 악에 화를 내고 취조도 하는 게 영화·드라마 속 이미지다. 실제 재판에선 모든 서류를 미리 제출하는 게 규칙인데 리얼하게 하면 재미가 없다. 사람들이 원하는 리얼함은 개를 죽였다고 사람을 다 죽이는 <존윅>처럼, 주인공의 행동이 ‘그럴듯하게’ 자유로운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리얼함을 추구하며 시청자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웹소설은 기본적으로 스트레스 해소성 문학인데,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해결책도 없어서 답답해지면 그 리얼리티는 실패 원인이 된다”고 했다.


웹툰 <닥터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순간부터 취재는 존재하는데, 제 철칙은 초벌 취재를 대충하는 거다. 가십과 루머 등을 바탕으로 이야기 몸집을 키운 후에 전문가에게 가서 ‘이건 안되는데 이렇게 하면 될 수도 있어요’라는 자문을 얻고 있다”며 “자칫 팩트가 발상의 확장을 제한할 수 있는데 이야기 매력은 보존하면서 말이 되게 하는 제 방식”이라고 하기도 했다.

실제 흥미로운 플롯을 구축하는 방법과 현재 필드에서 영상화를 결정하는 방식 등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723만명이 관람한 영화 <1987> 등 역사 속 사건을 토대로 집필을 해온 김경찬 시나리오 작가는 ‘맥락’과 ‘간극’을 강조하며 기획 당시 ‘6월 항쟁’의 영화를 만들려던 여러 제작사들과 차별된 지점을 설명했다. 그는 “다른 곳은 박종철 열사나 이한열 열사만 다루려 했는데 저는 절대악을 일반 평범한 사람들이 낙숫물이 돌을 뚫듯 이뤄진 일인데 한 사람이 했다고 하는 건 왜곡이라 봤고 그래서 주인공이 없는 ‘릴레이 플롯’을 짰다”면서 “하정우 배우가 연기한 검사는 원래 술을 전혀 못 먹는데, 모든 캐릭터가 진지해서 간극을 벌리고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가게 하기 위해 술꾼 캐릭터로 바꾸기도 했다”고 했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이슬기 스튜디오S CP는 업계의 영상화를 위한 원작 IP발굴 방식과 관련해 “회사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원작 모두를 볼 수는 없는 만큼 대학생 인턴 등으로 구성된 내부 팀이 스크리닝을 하고 제안서를 작성해 올리면 그걸 보고 선택하는 식이 일반적인 것으로 안다”며 “결국 원작은 영상화를 위해, 또 장점을 살리기 위해 제목과 핵심 설정을 빼곤 작가를 붙여 모든 걸 바꿔야 한다고 저는 생각한다. 무조건 눈에 띄어야한다고 보는데 제목이나 차별화된 설정 하나 때문에 사기도 한다. 이야기, 캐릭터 등 측면에서 안정적이고 탄탄하지만 크게 재미 없는 80점, 80점, 80점 대본보다 100점, 30점, 30점을 받는 대본이 패키징을 할 수 있는 기획으로선 훨씬 낫다”고 했다.

실화 스토리 등을 기획하는 팩트스토리가 25일 ‘스토리와 리얼리티-창작자를 위한 취재와 리서치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사진은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의 이슬기 스튜디오S CP, 원작 저자 고나무 팩트스토리 대표의 대담 모습. /팩트스토리 제공


웹툰 <삼우실> 작가이기도 한 김효은 CBS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선 그 외 누적 25만부 만화 <십자군 이야기>의 김태권 작가,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 <녹두꽃>의 신경수 드라마 감독, 문학계간지 <계간 미스터리>의 한이 편집장, 영화 <밀정>을 제작한 이진숙 엔젤언더그라운드 대표 등이 참여해 취재와 리서치를 스토리로 승화시킨 창작 노하우를 전했다. 매 강연마다 창작자드에게선 취재 방식에 대해 공통적인 질문이 나왔고, 스피커들에게선 도서관이나 현지 취재를 통한 자료조사, 지인을 통한 전문가 섭외 및 인터뷰 등 방식이 답변으로 제시됐다. 취재를 업으로 하는 기자들과는 다른 결의 고민이 엿보이는 과정이었다.


총 12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한국 스토리 산업 절반의 발전에 도움이 되겠다는 취지로 엠스토리허브, 지앤지프로덕션, 한국시아니로작가협회, 스튜디오S, 씨네21, 한국만화가협회,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블라이스 등의 후원을 통해 개최됐다. 고나무 대표는 이날 자체 시장조사를 근거로 “2023년 네이버웹툰 신작 300여편과 카카오웹툰 신작 430여편 가운데 변호사, 요리사 등의 특정 직업 소재 작품은 약 10%”라며 “작년에 공개된 드라마 100여편 및 신작 상업영화(스크린수 200개 기준) 60편 가운데 ‘서울의 봄’과 같은 실화 또는 특정 직업 소재 작품이 20%를 넘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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