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계열사 발송 직원들 노조 설립, 언론노조 가입

언론노조 조선일보신문발송지부 설립
초대지부장 "상식적인 노사문화 초석 다져 노동조건 개선할 것"

조선일보의 자회사로 광고대행 업무를 담당하는 조선IS 소속 발송부문 구성원들이 최근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산별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에 가입했다.

언론노조는 4월26일 12대 13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신규조직 설치 승인의 건’ 논의를 통해 조선일보신문발송지부의 가입을 만장일치로 원안 통과시켰다. 신문(전단)광고, 온라인광고, 지역판매망 관리 등 사업을 하는 조선IS 전체 직원 100여명 중 발송사업부 직원을 주축으로 꾸려진 지부다. 가입 시점 기준으론 발송부문 전체 직원 23명 중 18명(현재 19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 3월 중순 노조 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이후 발기인 회의와 교육, 운영규정 검토, 지부이름 결정 등 과정을 거쳐 4월20일 창립 총회를 열었다.

2일 조선일보신문발송지부 설립을 알린 언론노조 보도자료.

이혁수 언론노조 조선일보신문발송지부 초대지부장은 2일 기자협회보와 통화에서 “개인적으론 동아일보 (신문인쇄 쪽) 노조를 오랜 기간 비교해서 관찰하며 우린 왜 이렇게 열악할까 고민해 왔다. 중간중간 노력했지만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집단적 동의를 못 얻고 번번이 실패했는데, 입사 29년차이고 정년을 앞둔 상황에서 후배들에게 좋은 문화를 남기고 가야겠다는 결의가 섰다”고 밝혔다.

그는 “기본적으로 최근 2~3년 새 농축된 불만이 있고 조합원들로부터 많은 요구가 나오는 상황”이라며 “임금이나 복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건전한 노사문화 정착이 필요하다. 그 초석을 다지고 조합원들 요구를 반영해 영원히 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려 한다”고 했다. 이어 언론노조 가입이유에 대해선 “정파성이나 정치성을 고려했다기보단 언론사 구성원으로서 산별노조에 가입하는 건 당연하다는 전제로 접근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언론노조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부는 노조 설립 이유로 △부평사업장 내 투명인간 취급 △경영진의 무관심 △노사협의회 설치요구 회피 △열악한 작업환경 △경영진 잘못에 대한 노동자 책임전가 등을 들었다. 최근 몇 년 새 발송부문 근로조건이 지속 악화됐지만 사측의 해결 태도는 물론 대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과거 종이신문 제작 공정에 ‘조광, 선광, 일광, 보광’ 등 지역별 신문인쇄 자회사를 뒀지만 현재 선광만 남겨 서울 정동·인천 부평 공장을 돌리고 있다. 애초 인쇄·발송을 함께 담당하던 선광은 2018년 발송 부문만 따로 ‘조선M&L’로 분사했고, 이어 2020년 조선IS로 흡수 합병시켰다. 이 같은 변화를 겪은 후 이번 노조설립 주축이 된 발송부문 직원들은 지난 4년 간 노사협의회 설치 요구를 지속 묵살 당했고, 건의와 면담요구 역시 거절당하며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은 만큼 스스로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고 확장하고자 노조 설립 등에 나선다고 밝혔다.

조선IS 홈페이지.

소위 보수언론에서 산별노조에 가입한 노조가 나온 일은 흔치 않다. 과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노조는 1988년 창립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노련)에 속했지만 언노련이 2000년 산별노조로 전환,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 출범하자 탈퇴했다. 현재 동아일보의 인쇄 자회사 직원 등을 주축으로 한 동아일보 신문인쇄지부가 언론노조에 남아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조선일보신문발송지부가 향후 무난하게 활동을 하며 사측의 카운터파트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과거 언론노조 조광출판지부가 노조 결성 후 신문개혁투쟁에 적극 나섰고 2002년, 조선일보 사측은 공장 폐쇄 및 조합원 전원 해고 등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특히 소속 매체 성향을 떠나 신문사 안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된 목소리의 윤전·발송 직군을 중심으로 움직임이 나왔다는 점, 큰 틀에선 종이신문 위축 등 산업위기와 맞물렸다는 맥락에서 향후 이 같은 행보는 여타 매체로 확대될 여지도 있다. 최근 몇 년 새 국민일보, 서울신문이 윤전기를 없애기로 결정하며 노사가 팽팽히 맞선 바 있다. 2012년과 2019년, 동아일보 인쇄 자회사의 경영악화에 따른 공장폐쇄 및 정리해고, 임금협상 결렬 등으로 양쪽이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

이혁수 지부장은 이날 보도자료 등에서 “신문확장 때는 미디어 가족, 창립 100주년 기념품 줄 때는 남이 되어버리는 이중적 잣대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몇 차례의 구조조정 가운데 ‘해고는 살인’이라는 과격한 명제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봐오며 노동조합이 더욱 절실했다”면서 “단체교섭을 통해 상식적인 노사문화의 초석을 다져 노동조건을 개선시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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