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과징금 취소… 법원 "2인 방통위 위법"

[2인 체제 위법 명시한 첫 정식 판례]
실질적 다수결 되려면 3명 있어야
방통위 "기능정지 초래, 즉각 항소"

법원이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을 인용보도한 MBC PD수첩에 방송통신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 처분을 취소했다.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 방통위가 다수결 원칙을 실현하려면 위원이 3명은 돼야 한다는 취지다. 방통위의 ‘2인 체제’가 위법하다는 첫 정식 판례다. MBC와 함께 제재받은 다른 방송사들도 소송을 벌이고 있어 이후 관련된 재판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항소할 예정이다.

법원이 17일 방송통신위원회가 MBC PD 수첩에 부과한 과징금 처분을 취소했다. '2인 체제'로 운영된 방통위 행정 절차가 위법하다는 게 핵심 요지다. 사진은 7월31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상임위원이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한 모습. /뉴시스

서울행정법원 제7부(이주영 부장판사)는 방통위가 지난해 11월 MBC PD 수첩에 부과한 과징금 1500만원을 취소한다고 17일 판결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대통령 선거 사흘 전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를 인용한 MBC와 KBS, JTBC, YTN에 모두 더해 과징금 1억4000만원을 매겼다. 방통위가 이를 넘겨받아 확정한 뒤 MBC는 2월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합리적인 토론 가능성이라는 다수결 원리의 전제조건이 성립하려면 논리적으로 최소 3명 이상 구성원이 필요하다”며 2인 방통위는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2명의 의견이 서로 갈리면 아무런 결정을 할 수 없고 만장일치만 할 수 있을 뿐이어서 결국 실질적 의미의 다수결은 3명부터라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MBC와 방통위는 녹취록의 원본을 구하지 않은 채 편집된 음성을 직접 인용한 보도가 객관성과 공정성 위반인지 여부를 다퉈왔다. 녹취록에는 2011년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이 담겼다. 재판부는 이보다는 방통위의 2인 체제에서 집행한 제재가 위법인지를 주요 쟁점으로 제시하고 양측의 논박을 구했다.


당시 방통위 측은 방통위법에는 특별한 규정이 없으니 정원 5명 중 지금 위원이 몇 명이 됐든 다수결로 의결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위원이 1명만 남을 때는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해도 된다는 말이냐며 의문을 드러냈었다. 이런 지적은 판결문에도 그대로 담겼다. 재판부는 이 주장이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해석에 불과하다며 “합의제 행정기관의 존립 자체를 무의미하게 하는 것으로 부당하다”고 분명히 했다.

2022년 3월8일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을 인용해 방송된 MBC PD수첩.

재판부는 또 법 문언을 해석하더라도 최소 3명의 위원이 필요하다며 구체적 규정이 없다는 방통위 주장을 부정했다. 방통위법의 위임을 받은 행정규칙인 방통위 내부 규정을 보면 위원장에게는 혼자만의 뜻으로도 회의를 소집할 권한이 있지만 “2일 이전에 각 위원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돼 있는 점을 보면 최소 2명 이상의 다른 위원을 상정해 두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독일과 미국의 법 사례를 가져와 이들 국가에서도 합의제 행정기관에서는 3인 이상 위원이 필요하게 규정돼 있다며 3인부터 다수결이라는 원칙이 “비교법적으로도 일반적”이라고도 판시했다. 재판부는 선고 이유를 설명하며 이미 절차에서 위법성을 확인한 이상 객관성, 공정성 위반 등 실체적인 내용은 더 따져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방통위의 2인 체제가 위법이라는 판단은 집행정지가 아닌 정식 판례로서는 처음이다. MBC와 같은 시기 다른 방송사들도 방통위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번 재판의 영향을 받아 차례로 취소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3월 KBS를 마지막으로 이들 방송사 모두 행정법원으로부터 본안 판결 전 제재 처분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둔 상태다.


또 8월 제기된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와 KBS 이사 임명 취소소송, 이보다 앞서 2월 시작된 YTN 최대주주 변경승인 취소소송 등 방통위의 다른 소송에도 영향이 예상된다. 방통위는 지난해 8월 이동관 위원장이 임명됐을 때부터 국회 추천 몫 3명을 빼고 대통령이 스스로 추천하고 임명할 수 있는 몫 2명만으로 운영됐다.


방통위는 판결 다음 날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의 제재는 방심위의 요청에 “기속해(얽매여) 처분”하고 있고 “국회의 위원 추천이 없으면 2인 체제가 강요된다”는 이유다. 민간기관인 방심위의 제재 결정은 국가검열 비판 때문에 방통위가 개입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고, 2인 체제 운영도 스스로 원한 바가 아닌데도 법원의 이번 판결은 결국 방통위를 정지시키라는 뜻으로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그러면서 “최근 헌법재판소가 7인의 심판정족수를 강요한 법 규정이 헌재의 마비를 초래하므로 이를 우려해 가처분을 통해 효력을 정지시킨 바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탄핵심판 중인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국회가 퇴임한 재판관 3명의 후임을 추천하지 않아 헌재 기능이 중지되면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며 가처분을 신청했고 14일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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