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이유 설명 못하고, 마이크는 혼자 1시간40분

[이슈 분석] 윤 대통령 네 번째 기자회견 무엇이 문제였나

지지율이 10%대까지 내려간 벼랑 끝에서 열린 기자회견이었다. 대통령실도 사안의 엄중함을 인식했는지 질문 분야나 개수,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 ‘끝장 회견’을 예고했다. “국민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모든 사안에 소상하게 답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이전 기자회견(8월29일)에서 40분이 넘던 담화문 발표 시간을 15분으로 줄이고, 대통령이 앉아서 진행하는 등 형식에도 변화를 줬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개최한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 도중 시계를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두 시간에 걸친 질의응답 중 약 100분을 답변하는 데 썼다. /뉴시스

사안의 엄중함을 느낀 건 대통령실만이 아니었다. 기자들도 첫 ‘끝장 회견’ 예고에 전보다 더 질문 준비에 공을 들였다. 회견 당일 분위기도 전과는 달랐다고 한다.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강연섭 MBC 기자는 7일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시작부터 끝까지 냉랭했다”면서 “통상 출입 기자들이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기자회견 직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대통령이 입장하는 걸 맞이하는데, 오늘은 시작과 끝 모두 박수를 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달라진 건 거기까지였다. 나중에 ‘자유 질문’ 시간을 추가하긴 했지만, 정치현안, 외교안보, 경제·사회 등 주제별로 질문을 받는 건 그대로였고, 대변인이 질문할 기자를 지목하는 방식도 기존과 같았다. 대통령의 답변이 미진해도 재질문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담화문 발표시간 40분 → 15분으로... 2시간여 대부분 대통령 자신이 써

무엇보다 대통령이 그대로였다. 대국민 담화를 줄이고 질의응답 시간을 늘린 건 일방적인 얘기만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는데, 실제 그렇지 않았다. 이번 기자회견은 질의응답 시간만 해도 2시간 정도로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열린 기자회견 중 가장 길었는데, 그 시간 대부분은 대통령 자신이 썼다.


채널A가 분석해 보니 기자 26명이 질문하는 데 15분을 쓰고, 대통령은 답변에 97분 45초를 썼다. 답변에 평균 3.8분씩 쓴 셈이다. 김건희 여사 처신과 관련한 TV조선 기자 질문에는 10분 가까이 긴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김 여사 특검법에 관한 질문에도 작심한 듯 “제가 오늘 약간 길게 얘기하겠다”면서 7분 넘게 답변을 이어갔다. 그러더니 주제별 질의응답이 끝난 뒤 자유 주제로 질문 두 개만 받고는 “목이 아프다”며 “하나 정도만 더 하자”고 했다. 결국 ‘끝장’이란 말이 무색하게 기자 다섯 명의 질문만 더 받고 기자회견은 서둘러 마무리됐다.

대변인이 질문자 지목, 종전과 동일... MBC·JTBC 등 특정언론 배제 여전

대변인이 특정 언론에만 질문 기회를 주지 않는 일도 반복됐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가진 네 번의 기자회견에서 지상파 방송 3사 중엔 MBC만이, 종합편성채널 4사 중에선 JTBC만이 단 한 번도 질문하지 못했다. KBS와 SBS가 각각 세 번씩 기회를 가진 것과도 대비된다. 지역 언론 홀대와 편중도 여전했다. 이날 질문한 2명의 기자를 포함해 지금껏 네 번의 기자회견에서 질문권을 얻은 지역 매체는 부산일보(2회), 영남일보(2회), 충청투데이 등 3곳뿐이었다. 기자회견 때마다 대변인은 주로 지역 기자단 간사 1명만 지목했고, 결과적으로 소수의 기회 중 상당 부분이 영남 지역에 주어진 셈이 됐다.


윤 대통령은 언론 등이 제기한 의혹을 “무식한”, “침소봉대”, “악마화” “모략”, “가짜뉴스”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판하기도 했다.


당정 갈등을 풀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는 “언론에서도 갈등을 부추기는 거 아니냐”며 웃었는데, 기자들은 웃지 않았다. 대통령만 몇 차례 웃었을 뿐 시종 엄숙했던 이 날 기자회견에 대해 언론은 대체로 국민 눈높이에 못 미쳤다는 평가를 내놨다. KBS만이 당일 저녁 종합뉴스에서 야당 반발을 제외하고 어떤 비판의 목소리도 전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다음날 신문에서 대통령이 “허리를 굽혀 사과”하는 등 몸을 “낮춰” “소통”한 점을 주목하면서도 “크게 바꿔야 한다”고 강한 쇄신책을 주문했다.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