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희망의 메시지 듣고 싶다"

대한민국 평균 기자




  대한민국 ‘평균기자’로 선정된 정길근 기자  
 
  ▲ 대한민국 ‘평균기자’로 선정된 정길근 기자  
 
대한민국 ‘평균기자’로 선정된 정길근 기자는 12일 오전 인터뷰를 시작하며 “기자로 취재원을 인터뷰를 한 적은 많은 데 인터뷰 대상이 된 것은 난생 처음”이라며 쑥스러워했다.



정 기자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사회의 거울 같은 존재’로 정의하고 “그렇기 때문에 독자에게 전체를 보이지 않고 기자가 의도적으로 한부분만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기자들이 자신만의 오목렌즈나 볼록렌즈로 진실을 일그러뜨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기자는 최근의 언론개혁과 관련해 “우리(기자들)에게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것을 인정 한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기자들도 이제 마인드가 많이 변했고 취재원에게도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데 실제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자신이 대한민국 평균기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어땠나?

68년 10월생이니까 37살은 맞고 입사년도가 95년 12월이니 9년도 거의 일치하는 것 같은데 좀 쑥스럽다. 내가 인터뷰를 하러 간적은 있지만 나를 하러온 것은 이번이 평생 처음이다. (웃음) ‘평균’보다는 보통기자로 해 달라.



-처음 기자가 된 동기를 듣고 싶다.

제대를 하고 취직을 준비하는데 3학년 2학기에 자연스럽게 언론사시험을 준비했다. 언론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은 강했지만 솔직히 고민이 좀 없이 결정한 것 같다. 내 성향이 좀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입사할 때만 해도 청년실업이 심각하지 않아서 대학교 졸업하고 언론사가 안되면 기업에 가면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처음 입사할 당시에 언론계 상황은 어땠나?

나 같은 경우는 시험을 경향신문 말고도 한겨레, 조선일보도 봤고 사투리 때문에 방송은 포기를 했지만 YTN도 보고 그랬다. 지금은 극명하게 갈려서 특정언론사는 꺼려서 안보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때만 해도 그런 구분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가 한화그룹이 경영하던 마지막 시기고 언론계 전체상황도 그리 나쁘지 않아서 수습도 하기 전에 일본으로 연수도 가고 했던 시절이다.



-수습시절과 첫 출입처에서의 경험을 듣고 싶다.

아마 마포경찰서였던 것 같다. 그때는 노트북은 지급이 됐지만 핸드폰은 없고 삐삐를 들고 다녔다.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는 중간에 선배들이 호출을 한다. 훈련시키려고 일부러 걸었다고 생각하는데 늦게 전화하면 “왜 아직 현장에 도착도 안 했냐”며 혼을 냈다. 수습보다 수습 막 끝나고 강릉에 북한잠수함 침투를 취재하러 간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카폰으로 연락을 했는데 통화가 연결이 안돼서 무지 깨졌다. 거의 한달 가까이 그곳에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연천에 큰 홍수 났을 때도 고생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후 96년 10월에 서울지검으로 발령이 났는데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한보비리와 김현철사건이 연달아 터지던 시절에 막내를 했다. 2년 반 동안을 말 그대로 물을 엄청나게 먹었다. 눈뜨면 물먹던 시절이다. 나는 그때 물먹은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느라 집에서 신문을 4개나 구독했다. 새벽 2시,3시에 들어갔다가도 5시에 눈이 딱 떠졌다. 당시 반장을 한 선배는 ‘이러다 내가 죽는 게 아닌가 싶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에 기사를 빨리 쓰는 훈련이 됐고 취재하는 법과 사건을 추적하는 법을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감을 앞두고 1면 스트레트와 2,3면 박스를 한꺼번에 쓰는 훈련이 된 것 같다.



-그 후엔 어떤 출입처들에 있었나?

99년 4월 정치부로 가서 한나라당과 국회를 출입했다. 대표 집에서 아침밥을 먹은 마지막세대로 알고 있다. 2000년 총선 당시 ‘공천파동’이 기억에 남는다. 총선 때는 오히려 덜 바쁜데 당시만 해도 밀실공천이라 공천을 전후해서 숨 막히는 취재전이 있었다. 그땐 특히 정치부 특성상 마감에 맞춰 기사를 빨리 쓰는 훈련이 된 것 같다. 그 후에 2000년 가을에 다시 검찰로 가서 흔히 ‘DJ정부 4대 게이트’를 취재했다. 그땐 다른 신문을 물 먹인 것이 더 많아 솔직히 신났다.(웃음) ‘정현준리스트’기사로 ‘이달의 기자상’도 타고 그랬다.



-자신이 보도한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과 기자로서 괴로웠던 일은?

아마도 ‘정현준리스트’와 관련해 청와대 청소부도 뇌물을 받은 것을 보도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 보도로 개인적으로 상도 탔고... 괴로운 것은 역시 한보사건 때 계속 물먹던 기억이다.



-현재 언론개혁에 대한 소리가 높은 데 기자로서의 입장은?

일반 독자들이 공개적으로 지목하는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에게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것을 인정하나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기자들도 이제 마인드가 많이 변했고 취재원에게도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데 실제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독립언론사 기자로 경제적인 문제도 힘든 점이 있을 것 같다.

전에는 기자들이 다른 직장과 비교해 볼 때 국장급이나 부장급까지는 다른 기업체보다 월급이 많다가 역전이 되는 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차장이나 과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초봉 때는 내가 3천만원 정도를 받았고 다른 친구들은 회사에서 1천7백만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아는데 지금 상황은 말을 못하겠다. 한 후배기자는 약간 농담조긴 하지만 ‘결혼을 해야 할 텐데 전세금도 없어 고민’이라고 말할 정도다.



-혹시 본인은 집이 있나?

연립주택에 사는 데 인생에서 가장 큰 판단실수였다.(웃음) 대출도 받고 해서 겨우 집을 장만을 했는데 오르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는 상태다.



-‘386세대’ 기자로서 뭔가 특별한 점이 있는 지 궁금하다.

우리보다 좀 더 앞에 학번들이 진짜 치열하게 싸우고 고민을 했고 우린 좀 끄트머리였다. 그 시대를 산 사람은 운동을 했던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공유하는 뜨거운 감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치관의 차이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다른 일에 열중한 사람도 가슴속에 ‘부채의식’ 같은 것이 남아 있고 그런 힘들이 모여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40주년을 맡는 기협에 회원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기협 뿐 아니라 언론단체들이 기자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보다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기자협회보도 얼마 전에 ‘기자사회가 무너진다’는 보도를 했듯이 위기상황이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희망의 메시지도 전해줬으면 한다. 기자는 자존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조금만 자존심을 세워주면 보도의 질이 달라진다.



-기자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나?

사회의 거울 같은 존재로 사회현상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에게 전체를 보이지 않고 기자가 의도적으로 한부분만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목렌즈나 볼록렌즈로 진실을 일그러뜨려서는 안 된다.



-언론계 선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선배님들과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헤아려 주자’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상대방 입장에서 차분히 생각을 해 보면 이해하고 서로 배려할 수 있을 것 같다.



-동료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목적을 가지고 한 부분만 강조하는 기사를 쓰지는 말자. 그리고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기사로 다 다루지 못하더라도 사안에 대한 배경을 자세히 알도록 노력하고 사회의 전체적인 흐름을 중시하자.



-젊은 후배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밝고 적극적인 면이 참 좋은 것 같다.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기법’의 문제인데 어떤 일이 있을 때 부당하다고 느끼면 현장에서 반박을 하기보다 우선 선배 의견을 따르고 나중에 생각을 한번 정도 더 해 본 후 도저히 용납이 안 될 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경험상 더 효과적인 것 같다. 선배들이 보면 ‘연차도 얼마 안 된 사람이...’하고 웃을 것 같다.(웃음)

실무적인 면에서는 현장,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가 많은 곳을 자원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기사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극복되고 다양한 취재기법을 배울 수 있다.



-나중에 2세들도 기자를 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들도 기자를 시키고 싶다. 아들이 둘 있는데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하면 하나는 기자를 시키고 싶고 또 한명은 검사를 시키고 싶다. 두 직업이 모두 남자가 한 번 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생하는 선배들을 보면 젊어서는 좋은데 나이가 들어서는 어떨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하게 된다. 데스크에 앉아 있기보다는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인 후에도 현장에서 취재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좋겠다.





<평균기자 어떻게 찾았나?>



회원 6천명중 2백명 무작위 추출

성별·나이·근무경력 평균치 산출



기자협회보는 기자협회창립 40주년을 맞이해 기자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성별 △나이 △근무기간등 3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평균기자’찾기에 나섰다. 6천여명에 이르는 전체회원명부를 기준으로 30명당 1명씩을 선택하는 무작위 표본추출 방식을 통해 2백명의 모집단을 추출한 후 각 항목별로 평균치를 산출해냈다. 이를 토대로 세 분야의 평균을 잡았다.

그 결과 대한민국 ‘평균기자’는 △남성(전체의 85%) △37.1세 △근무경력 8.9년으로 밝혀졌다. 이 기준을 토대로 각 회원사에 문의해 대상 후보들을 선정한 후 편집회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정길근 경향신문 기자를 평균기자로 선정했다.

‘평균기자’로 선정된 정 기자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89학번)를 졸업하고 95년에 경향신문에 입사했다. 가족으로는 동갑인 부인 송민희씨와 민섭(8),

명훈(6) 두 아들이 있다.



글·사진=손봉석 기자 [email protected] 손봉석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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