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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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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데스크를 보좌하는 자리에 있는 필자에게 요즘 중요한 임무가 하나 더 생겼다. 신문사 대표로부터 받은 위임장과 중재신청서를 들고 언론중재위원회에 출석하는 일이다. `중요한 임무`라고까지 표현한 것은 빈번함 때문이다.
올 들어 한달에 한번 꼴로 중재위를 들락거렸다. 지난달 말에는 하루에 2건을 치러내야 했다. 그날 필자가 일하는 신문을 상대로 중재 신청을 낸 곳은 건설교통부와 산업자원부. 경제부처들의 `잘못된 보도’라는 지적에 맞서 설전을 펼쳐야 했다.
프레스센터 15층 언론중재위 사무실의 중재재판 일정을 담은 게시판을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기 힘들다. 30분 단위로 이어지는 무더기 중재신청 일정 때문이다. 신청인의 대부분은 정부부처들이다. 중재위원들은 중재재판이 있는 날엔 사안 심리에 거의 파김치가 될 정도라고 토로할 정도다.
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에 규정된 언론중재위의 존재 이유는 이렇다. 정기간행물이나 방송의 보도에 의해 피해를 입은 개인, 단체 등으로부터 중재신청을 접수해 해당 신문이나 잡지, 방송을 통해 반론보도나 추후보도, 정정보도가 나갈 수 있도록 중재하는 일이다. 언론의 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나 단체가 해당 언론사에 자신이 작성한 반론문을 게재(또는 방송)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론보도청구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중재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법원에 직접 청구할 수 없도록 해 놓고 있다. 언론중재위 자체가 사법적 권위를 부여받은 일종의 재판인 셈이다.
그러나 요즘 중재위가 활용되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잘못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5월까지 2백74건의 중재 신청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기각되거나 각하된 경우를 빼고 중재 대상이 된 것은 2백51건이다. 신청인별 분류를 보면 개인 1백5건, 국가기관 73건,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단체 25건, 기업 33건, 일반단체 33건 등이다.
신청인별 분포를 곰곰이 살펴보면 잘못된 징후의 단초를 읽을 수 있다. 정부부처와 지자체 등의 문제제기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출범 후 언론과 정부간의 긴장관계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국정홍보처의 관리 아래 부처마다 신문과 방송의 보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급증한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요즘 각 부처의 언론중재 신청은 도를 넘어선 수준으로 보인다.
어떤 부처는 기자들의 취재 현장 소회를 담은 `기자수첩`이나 개인 명의의 칼럼 내용에 대해서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다. 뉴스 보도와 그 해설에 대한 잘못을 지적한다면 얼마든지 따져보고 수용할 수 있지만 개인의 견해를 사사건건 따진다면 한계가 불분명해진다.
중재위가 열렸던 날 재판장을 맡았던 판사는 필자의 이런 항변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그는 “언론중재위를 둔 것은 돈도 힘도 없는 약자들에게 언론 보도에서 생긴 피해를 구제해주기 위한 것이었다”며 “요즘에는 언론중재위가 아니라도 의사를 표시할 창구를 충분히 가진 정부부처들이 중재 신청을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중재위를 둔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신청인과 피신청인 모두에게서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희소가치가 유지돼야 한다. 요즘처럼 언론중재 신청이 남발된다면 희소가치와 권위로부터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부처들의 건수 채우기식 언론중재 신청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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