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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규찬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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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를 보낸다. 어머니 지구, 가이아의 저주가 본격화되었는지 말도 안 되게 따스한 기온이 시즌 마감을 방해하지만, 그래도 시간의 흐름은 여지없다. 2004년 한국사회, 기억하고픈 사건도 있지만 빨리 잊어버리는 게 나은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 더 많았다.
정치적으로는, 뭐니 해도 노 정권에 대한 탄핵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다음주 신문사들이 내놓을 올해 ‘십대뉴스’에 탄핵은 분명 톱으로 뽑힐 것이다. 새로운 피가 아무리 수혈되어도 한국사회에 정치는 성립하기 어려움을 여지없이 보여준 비극적 사건이었다.
한편 경제적으로는 IMF에 버금갈 정도로 심각한 불황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여타 사건처럼 충격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지만, 그 장기지속적인 효과성은 노동대중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소수 재벌이 유래 없는 수출 호황을 기록하는 가운데, 대다수 생활자들은 실직과 비정규직의 불안, 파산과 영구 실업의 공포를 집단적으로 경험해야 했다. 후기 자본주의 이중사회의 구조화된 역설적 얼굴이다.
그렇지만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의 불안을 엉뚱하게 노 정권과 진보세력의 실패 탓으로 돌리는 수구 세력의 공세는 이 땅을 단숨에 냉전의 시간 속으로 되돌려놓았다. 사회적 갈등이 만들어지고, 긴장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런 정치적 대립과 경제적 불안, 사회적 갈등의 상황에서 한국 감독들의 해외 영화제 시상과 ‘욘사마’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적인 성취가 그래도 위안이라면 위안으로 남을 수 있겠다.
2004년 신문과 방송도 이런 총체적 문맥 속에서 그 과실이 정확히 평가되어야 한다. 매체는 정치적 진화에 대한 한국사회 내 다중의 열망을 올해에도 전혀 채워주지 못했다. 신문의 경우, 수구에서 ‘뉴라이트’ 신보수, 중도와 리버럴을 거쳐 진보까지 일정한 이념적 열린 배치를 가져오는 소득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다양한 이념 계발과 그에 기초한 일관되고 합리적인 비판, 궁극적인 공론 수행의 책무와 한참 어긋난 반 언론적 일방주의의 구태가 여전히 고수되었다.
정치 현실을 자기 뜻대로 엔지니어링하려는 못된 욕심도 채 극복되지 않았다. 결국 매체가 객관적 관찰자로 남는 게 아니라, 행위자로 직접 관여해 정치 과정 자체를 결정적으로 왜곡하는 문제가 두드러졌다.
이런 과잉 정치화는 국가정치의 민주적 형성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일개 정권이 아닌 국가 정치발전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다투어 책임지는 않는 매체는 그래서 올해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제도정치의 후진성을 따지기에 앞서, 스스로의 낙후된 정치적 개입 자세를 우선 성찰하는 숙제가 남는다.
이는 신문과 방송사, 그리고 그 내부 구성원들이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 노출된 상황에서 특히 중요해진다. 경제 위기는 더 이상 과장된 느낌, 거짓된 담론이 아닌 구체적 현실이다. 대자본을 제외한 다수의 공통 감각적 생존 불안의 사태다. 방송사들이 겪고 있는 광고 축소의 위기, 인쇄 신문들의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시장 상실의 위험은 매체 관련 올해 최악의 뉴스일지 모른다. 내년의 예측도 결코 낙관적이지 않아 보인다.
이런 악조건이 자칫 합리적 선택 대신 무리한 집착을 부추길 수 있다. 사회적 책임감보다 협소한 이기심을 꼬드길 수 있다. 경제가 정치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매체가 취하는 이념적 성향 또한 정치 논리보다 시장 논리에 의해 오히려 더 크게 좌우된다. 그래서 관심은 장기 불황의 현실에 노출된 신문과 방송이 과연 위기를 어떤 담론으로 처리하고 모순을 어떤 방식으로 풀이할지 여부에 모아진다. 정치를 충돌로 이끌고 사회를 갈등으로 안내하면 돈 된다는 얄팍한 상술의 유혹,
그러나 그 대가는 한 해 동안 지긋지긋하게 실감했듯이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사유와 판단,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만 살려고 타자를 살해하는 무서운 게임은 올 해로 끝장내자. 모두가 이제 너무 지쳤다. 살생의 시간을 잊고 새로운 마주침의 길을 꿈꾸는 위무의 망년회, 더위 먹은 12월의 한갓 망상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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