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꺼풀 수술'과 대통령 보도의 피상성




  설원태 차장  
 
  ▲ 설원태 차장  
 
국내 언론 매체들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눈 수술(쌍꺼풀 수술)을 받았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대통령의 눈 수술’ 기사는 어느 정도의 뉴스가치를 가졌다고 판단해야 하는가. ‘북한의 핵 보유 선언에 대한 대통령의 침묵’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까. 혹시 이 기사는 독자들의 눈을 끌기 위한 가벼운 화제 거리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대통령 기사는 어느 정도로 가벼워도 되는가.



여러 전문가들은 대통령에 관한 기사가 오래 전부터 피상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표피적인 대통령 보도의 실례도 많다. 대통령은 이제 중요한 정치 메시지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인기 연예인처럼 한담(閑談)의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대통령에 관한 피상적 보도는 국내외 구별 없이 환영받는 듯하다. 몇 년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거실에서 마른 과자 ‘프레첼’을 혼자 먹다가 몇 분간 혼절한 적이 있다. 당시 부시는 넘어져 광대뼈 부분의 한쪽 뺨에 100원 짜리 동전만한 크기의 찰과상을 입었다. 뉴욕타임스는 1면에 이 기사와 사진을 동시에 보도했다. 전통적 기사가치의 관점에서 이 기사는 반드시 1면에 나와야 할 (예컨대) ‘대통령 피살 모면’이나 ‘대통령 큰 부상’과 같은 기사보다 가치가 떨어짐에는 틀림없다.



부시 대통령에 관한 피상적 보도 중에는 ‘산악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다 넘어졌다’는 것도 있고, 그가 아내 로라의 생일을 맞아 애견을 선물하기로 했다는 기사도 있으며, 그의 영어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기사도 있다.



국내 언론 매체의 대통령 보도는 혹시 좀 덜 피상적일까. 작년 한 신문은 탄핵 파동과 총선 이후 노 대통령이 자신감을 회복한 때문인지 ‘목소리에 더 힘이 들어갔다’고 전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 보도는 과학적 분석에 근거한 것이었으나 대통령의 국정 업무에 관한 핵심 기사라기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읽을거리의 범주에 속한다 할 것이다.



여러 해 전에는 대통령이 소유한 수레 5대 분량의 서적이 취임시 청와대로 옮겨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당시 기사들은 그가 읽은 책이 이만큼 많다는 맥락으로 책의 많은 분량에 초점을 맞추었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를 연상시키는 ‘수레 5대 분의 서적’의 기사는 대통령이 어느 책을 좋아하며, 그 책을 읽은 대통령이 어떤 영향을 받았다는 심층 보도는 하지 않았다. 그만큼 피상적 보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 대통령은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애독한 것으로 보도됐다. 필자가 알기로는, 이 책의 원서는 모두 10여권에 달하는 매우 방대한 고대사 서적이다. 이것은 ‘읽는다’는 표현이 아니라 ‘깊이 연구한다’거나 ‘열심히 공부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매우 난삽한 책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대통령에 관한 피상적 기사를 추구하는가. 대통령학자 조지 에드워즈(텍사스 A&M 대학)와 스티븐 웨인(조지타운 대학)의 공저 ‘대통령의 리더십:정치와 정책 결정(Presidential Leadership: Politics and Policy Making, 1994)’은 이에 관한 부분적 설명을 제공한다. 두 학자는 ‘오늘날 대통령 기사가 피상적으로 변한 것은 언론사 간부들이 (복잡한 정책 기사와 같은) 무거운 기사로 독자나 시청자를 따분하게 만들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눈길을 잡기 위해 보도 간부들은 언제나 새롭고도 색다른 대통령신상에 관한 기사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두 저자의 지적은 백악관 기자들의 미국 대통령 보도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 국내 언론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필자는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 기사의 피상성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원론적 화두를 제기하고 싶다. 대통령의 쌍꺼풀 수술 기사에 대해 한 논객은 칼럼을 통해 ‘잘 보이도록 눈 수술을 했으니 (노 대통령은) 세상을 더욱 넓게 보고 민생을 챙겨 달라’는 ‘정치적 의미’를 부가했다. 이런 의미를 추가해서라도 대통령 기사의 피상성을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설원태 경향신문 국제부 차장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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