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들의 정상적 이직(移職)을 위하여




  원용진 교수  
 
  ▲ 원용진 교수  
 
언론현장에선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초라해졌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할지도 모르겠다. 최근 기자들의 언론현장으로부터의 엑소더스를 목도하고는 짧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펼쳐야겠다는 맘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행정부 혹은 산하기관의 홍보, 공보와 관련된 자리의 공채에 10년, 15년차의 현직 기자들이 대거 지원하고 있다. 유능한 지원자가 너무 많아 선발과 제외 과정에서 애를 먹고 심지어는 선정을 미루는 예도 많다고 한다. 기자들이 엑소더스하는 대상은 공공기관에 한정되지 않는다. 대기업으로의 이직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유학을 가거나 대학원 진학으로 진로를 아예 바꾸는 이들도 전에 없이 많아졌다.



올해 발표된 언론인 관련 조사결과 따르면 간부 언론인들의 연령이 지난 3년 전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고 한다. 그만큼 언론인의 근무 연한이 짧아졌다는 이야기다. 사십 고개를 넘어서면서부터는 관료적 사다리를 타야한다는 중압감을 느끼거나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고민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도 되겠다.



오랫동안 언론이 정상화되지 않았던 탓에 뒤늦게 무서운 중병을 만나 악전고투하는 모습은 아닐까. 언론을 천직으로 여기고 평생직장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열정을 불태웠을 그들에게 언론을 정상화해야 할 책임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미안해야 한다. 그들의 터전이 제대로 가꾸어지지 못했음에 관련된 모든 이들은 고개를 떨구어야 할 것 같다.



정상화되지 않은 언론으로부터의 엑소더스가 성공했다 하더라도 옮겨간 곳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사실 언론직은 여러 직종과 비교해보면 보편성보다는 특이성을 더 많이 갖는다. 종사하는 직종이 늘 우위에 서는 일종의 권력직이었다는 사실, 조직 내 유기성을 기반으로 하기 보다는 단독 업무수행에 익숙해있다는 점, 자율성이 강조된 탓에 관료적 체제에 대한 적응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점 등이 언론으로부터 탈출한 이들의 도약을 막는다. 그런 탓인지 또 다른 권력직이며 단독직이고 자율성을 누리는 정치 영역 등에서만 가끔씩 성공 소식을 전해 줄 뿐이다.



하지만 아직 언론은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을 퍼다 나르는데 충실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 운명의 주인공이란 사실에는 눈감아 왔다. 언론사 간의 기자 이동에 대해 관심을 보이긴 했으나 타 직종으로 이직에 대해선 입을 닫아오고 못 본 척 한 감이 있다. 갑작스러운 정치적 발탁 등 비정상적인 이직에 대해서는 익숙해있지만 정작 지극히 정상적인 최근의 이직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언론이 언론인을 거듭해서 해치는 꼴이다. 자신의 비정상성으로 인해 이직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언론인에 대해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음은 언론이 비정상성의 악 순환적 고리에 빠질 가능성을 더욱 부추기게 된다.



언론인을 특별 우대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이전까지의 기자들의 이전은 매우 비정상적이었고, 언론의 정상성을 해치는 계기로까지 작동했음에 틀림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들의 엑소더스를 정상화시켜 주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이직에 대한 충분한 정보제공, 이직을 위한 준비과정의 제공, 이직에 대해 여러 형태의 배려 등등. 지금까지의 기자 이직이 매우 한정적이고 비정상적이었다는데 언론계가 동의한다면 기자들의 이직에 대한 정상적 대처, 그를 통한 언론의 정상성 회복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언론이 더 겸손해져야 하고, 솔직해져야 하며, 주도면밀해야 할 것 같다. 원용진 서강대 신방과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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